논란의 텔레그램…‘무한대 자유’와 ‘무한대 위험’ 사이

김민주 외신전문 프리랜서 2024. 9. 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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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두로프, 프랑스에서 체포돼…수사 과정에서 ‘자유 중시’ 기조 후퇴

(시사저널=김민주 외신전문 프리랜서)

텔레그램은 알아도 텔레그램 창업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나 에반 스피겔(스냅챗) 등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텔레그램 창업자는 그간 베일에 싸인 인물로 여겨져 왔다. 바로 러시아 출신의 '조만장자'인 파벨 두로프(39)다. 

그에게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건 8월24일이었다. 파리 외곽 르부르제 공항에 도착해  내리자마자 프랑스 경찰에 긴급 체포된 것. 4일 후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원)를 내고 석방된 두로프는 현재 프랑스에 머무르면서 일주일에 두 번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에는 최대 징역 10년 및 50만 유로(약 7억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전망이다.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공동 창립자가 2017년 8월1일(현지 시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AP 연합

마약 밀매·미성년자 성범죄 방치로 기소

현재 예비 기소된 두로프에게 적용된 혐의는 마약 밀매 공모, 아동 성학대물 유포, 미성년자 성범죄 방치, 자금 세탁 등이다. 더 정확히는 텔레그램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행위를 방치했고, 관련 범죄자들의 대화 내역과 신원 정보를 넘겨 달라는 프랑스 수사 당국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런 혐의에 대해 텔레그램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두로프의 변호인은 "소셜네트워크 회사의 대표가 자신과 관련도 없는 범죄행위에 가담했다고 취급받는 건 터무니없다"고 항의했다.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범죄행위에 대해 해당 플랫폼 CEO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의미였다. 

그동안 텔레그램은 다른 플랫폼에 비해 각종 범죄행각에 연루된 사례가 유난히 많았다. 가령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겨준 성착취 범죄인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의 온상도 텔레그램이다. 때로는 음모론의 발원지가 되기도 하며, 신나치주의자들이나 소아성애자들이 비밀리에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텔레그램이 유독 범죄에 악용되는 이유는 뭘까. 텔레그램의 가장 큰 장점이면서 동시에 단점이기도 한 '익명성'과 '강력한 보안' 그리고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텔레그램에서 사용자 간에 나눈 대화 내용은 암호화되기 때문에 제3자가 절대 감시하거나 해독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철저한 보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최대 20만 명까지 참여가 가능한 대화방의 확장성도 강점이자 약점으로 꼽힌다. 

양날의 검과도 같은 텔레그램의 이런 특성들은 한편으로는 사용자들에게 '무한대 자유'를,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대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범죄자들이 익명성 뒤에 숨어 마음껏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텔레그램이 자유를 중시하는 이유는 두로프가 최우선하는 가치가 바로 자유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인터뷰에서 두로프는 "나에게 부자가 되는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도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인생의 사명이었다"고 했다. 텔레그램 본사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설립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두로프는 "두바이는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UAE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국이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이 후발주자였음에도 대성공을 거둔 이유도 바로 이런 특성 덕분이었다. '스태티스타'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텔레그램은 왓츠앱과 스냅챗에 이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다운로드되는 메신저 앱이다. '포브스'가 추정하는 기업 가치는 현재 300억 달러(약 40조원)가 넘는다. 월 사용자 수는 10억 명에 달한다. 두로프의 순자산은 현재 155억 달러(약 21조원)로 추정되며, '포브스'가 집계하는 세계 부호 순위에서는 120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로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신비로운 인물이었던 이유는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극히 적은 데다 스스로 인터뷰를 자처하는 경우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인 두로프는 라틴어 학자이자 언어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2001년 옛 소련이 붕괴하자 다시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프콘탁테(VK)를 설립한 때는 2006년이었다. 페이스북 성공에 자극받아 동창생 둘, 수학 및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친형 니콜라이와 함께 회사를 공동 설립했다. 이 도전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사용자 수가 1년 만에 1000만 명을 넘으면서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로 급부상했다. 두로프가 '러시아의 저커버그'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텔레그램, '범죄 악용' 지적받던 일부 기능 삭제

하지만 성장세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의 압박과 통제 때문이었다. 러시아 정부는 2011년에는 야당 정치인들의 VK 페이지를, 2014년에는 반러시아 우크라이나 시위대의 개인정보를 연방보안국에 넘기고, 야당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VK 페이지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두로프는 이런 요구들을 모두 거부했다. 오히려 러시아 정부의 요구 사항이 담긴 명령문을 공개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결국 VK의 CEO직에서 해임된 두로프는 자신의 지분을 전부 매각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당시 러시아를 떠나면서 두로프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는 7가지 이유'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법원, 입법, 교육 시스템, 세금 정책 등을 공개 비판했다. 

러시아를 떠나 카리브해의 세인트키츠네비스로 향한 두로프는 그곳에서 설탕산업다각화 재단에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를 기부한 후 시민권을 취득했다. 두로프는 현재 UAE와 프랑스 시민권도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 은행에 예치해둔 3억 달러(약 4000억원)의 현금은 훗날 텔레그램을 설립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됐다. 두로프에게 돈은 자유보다 결코 중요한 덕목이 아니었다. 그가 "현금이나 비트코인 외에 부동산, 비행기, 요트 같은 자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14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나는 어디에도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매우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체포 후 조사를 받고 있는 두로프는 어느 정도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령 텔레그램 사용자의 0.1% 미만이 사용했던 '주변 사람 찾기' 기능을 삭제하고, 대신 '주변 비즈니스 찾기' 기능을 선보일 예정이다. '주변 사람 찾기'는 내 주변에 텔레그램 사용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기능으로, 그동안 범죄에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자주 묻는 질문(FAQ)에서는 '개인 채팅 내용은 보호되며, 이를 대상으로 한 조정 요청은 처리되지 않는다'는 항목이 삭제됐다. 앞으로는 사용자들이 관리자에게 채팅 내용을 직접 신고할 수 있다. 

과연 텔레그램은 이런 변화를 통해 '범죄의 온상'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그렇게 두로프는 애써 지키려 했던 자유라는 가치도 양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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