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과 야채를 허하라![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복혜숙을 비롯한 몇 명의 여성이 잡지에 낸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성명서는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들의 외침을 90년 뒤에 끌어와 '서울' 대신 '신문'으로, '딴스홀' 대신 '계란'과 '야채'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출연자가 '계란'과 '야채'를 말하더라도 자막에서는 악착같이 '달걀'과 '채소'로 고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복혜숙을 비롯한 몇 명의 여성이 잡지에 낸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라는 성명서는 제목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딴스홀은 곧 무도장, 오늘날로 치면 나이트클럽이다. 완고한 총독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외침은 여전히 강렬하다. 이들의 외침을 90년 뒤에 끌어와 ‘서울’ 대신 ‘신문’으로, ‘딴스홀’ 대신 ‘계란’과 ‘야채’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출연자가 ‘계란’과 ‘야채’를 말하더라도 자막에서는 악착같이 ‘달걀’과 ‘채소’로 고친다. 일상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방송이나 신문에선 안 된다는 지침 때문이다. 달걀은 고유어인데 계란(鷄卵)은 한자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야채(野菜)’와 ‘채소(菜蔬)’ 모두 한자어이니 말이다. 우리말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분께서 계란과 야채가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라고 지적한 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금기어처럼 되었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어를 쓰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리하면 우리의 사전은 무척이나 홀쭉해질 수밖에 없다. 한자어가 폭발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구의 물결이 밀려오던 시기이다. 우리는 이때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물과 사상을 한자어로 표현하는 것은 중국과 일본의 몫이었다. 우리는 그저 받아 쓰다 훨씬 후에 동참했다.
일찍부터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일본, 오랫동안 자의든 타의든 서구와 접촉했던 중국은 동등하게 한자 신조어를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말에서 일본제 한자어를 뺀다면 한자어를 반쯤 덜어내야 한다. 한자어도 우리말이니 계란과 야채가 안 될 이유가 없다. 야채가 본래 들나물을 뜻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미 사전에선 채소와 같은 뜻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쯤 되면 계란과 야채를 허할 법도 하지 않은가?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부부싸움 중 홧김 6개월 딸 15층서 던진 20대 엄마…20년 구형
- “중국 우한조선소에서 침몰한 잠수함, 최신형 핵잠으로 확인”
- “김정은도 피식했다”…한국 노래에 맞춰 춤추는 北 김여정
- “한동훈 끈질긴 ‘독대요청’, 당대표 사퇴 위한 빌드업” 김용남 전 의원이 한 말
- 오토바이 향해 발 내민 60대女…닿지도 않았는데 벌러덩
- [속보]‘김여사 공천개입 의혹’ 공수처 고발사건, 채상병 수사부서 배당
- 16세 의붓딸 강간男 감형 이유 “고용창출 사회 기여”
- 순천서 17세 여고생 흉기 살해, 30대男 긴급체포
- “커피 1잔 시켜놓고 10시간동안 일·공부” 결국 이렇게까지…카페 줄폐업
- “말인가 생선인가” 호주서 낚인 대형 산갈치…‘지진의 전조’ 속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