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타령·AI 타령만 늘어놓던 기성세대의 책임 [김동진의 다른 시선]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지난 8월말부터 공론화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먼저 인하대 학생들이 동기 및 선후배 여학생들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공유하는 단체채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보도된 이후 그와 유사한 성격의 딥페이크 성범죄 채팅방이 이미 다수 존재하고 있음이 연일 밝혀지고 있다. 보도 초기에는 주로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가해자들이 또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 밝혀지고, 심지어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범죄의 대상층은 여학생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여교사·연예인·군인·기자와 같은 직업군도 있었다. 이에 더해 가해 남성들은 자신의 여성 가족, 즉 여동생·누나·엄마의 사진까지 돌려가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사회 전반에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딥페이크 성범죄 채팅방의 역사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란 사실이다. 1200명의 남학생이 참가하는 인하대 채팅방과 22만 명이 참가한 또 다른 채팅방은 무려 4년 전인 2020년에 개설되었다. 2020년 이전에는 사실 'N번방 사건'이 있었다. '추적단불꽃'의 보도로 최초로 알려졌고 주범들이 처벌받은 N번방 사건은 2019년 공론화되었으며, 해당 범죄는 대략 2018년부터 이루어졌다.
10대들 다수 가담했던 N번방 사건에서 진화
N번방 사건 때도 가해자 남성들 중 10대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10대들이 이렇게 되도록 학교와 부모들은 무엇을 했냐며 교육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이미 5년 전부터도 있어왔다. 당시 대학생으로서 수업 과제로 N번방 사건을 조사했다가 도저히 멈출 수 없어 아예 그 사건을 집중 추적하는 활동가가 되었던 추적단불꽃의 '단'(활동명)은 N번방 사건 이후 가해자들이 '전공을 갈아탔다'고 말한다. 비록 사건의 주범들이 처벌받기는 했지만 소수의 운영자만 처벌받았으며, 해당 방에 참여해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즐기고 퍼뜨리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일에 가담했던 수만 명의 가해자 회원은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차피 텔레그램은 못 잡는다'거나 '딥페이크는 법이 없어 처벌을 안 받는다'며 딥페이크 성착취를 놀이로 즐겼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뿌리 깊은 문화는 사실 인류의 역사에 걸쳐 오랜 시간 존재해 왔다. 다수의 문학 혹은 예술 작품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차적인 존재이며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묘사되어 왔다. 여성에 대한 이러한 성적 대상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인간의 정서에 깊이 심어져 있고 널리 수용되고 있어, 심지어 지적 수준이 높고 윤리적으로 고결하다고 자타가 모두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신념에 도전하는 예가 드물다고 안드레아 드워킨은 분석한다(1979년 《포르노그래피》).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결국 포르노그래피와 성매매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며 지속되어 오고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어렵게 제작된 포르노 비디오가 손에서 손으로 유통되었다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은 전 세계적으로 포르노가 급속도로 퍼지는 데 일조했다. 미국의 경우 10대 청소년의 73%가 온라인 포르노를 시청한 경험이 있으며, 처음으로 포르노를 시청한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은 12세였다. 국내의 경우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매체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전체 청소년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포르노, 즉 성인용 영상물을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는 40%의 비율로, 코로나 이전 시기인 2018년의 20%에서 2배로 급증한 상태다.
20년 넘게 포르노 산업을 연구해온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 중에서도 매우 잔인한 하드코어가 해를 거듭할수록 많아지고 있다며, 강연을 하러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가, 특히 여성과 기성세대가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2020년 《포르노랜드》). 필자 역시 2019년 11월 한겨레에 처음 보도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기사를 읽었을 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텔레그램 사용 경험이나 블로그 검색을 통해 단체채팅방에 초대받아본 경험이 없었으며, 그 안에서 이루어지던 성범죄 방식도 생소해 현실감이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2020년 3월, 추적단불꽃 활동가들이 성착취 대화방에 잠입한 자신들의 1인칭 입장에서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국민일보 연재 기사를 읽었을 때에야 비로소 필자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기성세대와 젊은 층, 이에 더해 10대 청소년들과의 디지털 문화상의 갭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일탈 정도로 치부해선 안 돼
그러는 사이 AI를 비롯한 디지털 기술은 발 빠르게 발전해 왔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라인 세계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10대들은 기성세대가 알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놀이가 된 딥페이크 성착취 세계를 더욱 키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 사회는 N번방 사건 때와 같이 가해자들을 악마화하며 선긋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과 기성세대들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살아오고 있었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너희들이 사는 시대에는 AI를 모르면 안 된다며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습득해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만을 청소년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아닌지. 동시대를 사는 청소년들에게는 우리보다 더 많은 생산성을 요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래전부터 있었던 구조적인 젠더 폭력의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살피기보다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거나 없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나도 모르게 눈감아온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부정적인 측면, 윤리적인 문제 등에 대해서는 덜 고민하며 사회적인 대책 마련에 관심을 덜 두었다면, 기성세대의 그러한 모습 역시 오늘의 딥페이크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서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옛말은 그저 옛말이 아니다. 어른들의 가치관과 행동과 미세한 몸짓 등이 아이들의 도덕적 기준에 영향을 준다. 요즘 아이들의 일탈 정도로 치부하던 N번방 사건 때와 같은 태도로는 이 딥페이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텔레그램의 CEO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되면서 텔레그램은 이제 정책을 바꾸어 범죄자 검거 시 관련 당국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텔레그램 이용자 남성들은 이용자 보안 유지에 철저한 '시그널' '세션' 같은 다른 메신저 플랫폼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력한 교육을 통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번 딥페이크 사태가 잠잠해지고 나서 몇 년 후 우리 사회는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성범죄들에 직면할 수 있다. 변화를 위한 일에 우리가, 내가 적극 나서야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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