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가 불러낸 '고수' 최현석의 반가운 귀환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꼰대라는 말이 일상어가 됐다. 권위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이나 혐오 등 부정적인 뉘앙스가 훨씬 강하지만, 그럼에도 무조건 다 꼰대를 싫어하는 분위기는 또 아니다.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마음이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운다.
요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도 그렇다. 괄목할 만한 실력을 갖춘 신진 요리사 80명이 권위와 명성을 앞세운 요리 대가(大家) 20명을 상대로 대결을 펼치며 포문을 연 '흑백요리사'는 요리 서바이벌을 전면을 내세우고 있지만,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로도 감지되듯 그 이면에서는 권위에 대한 도전과 응수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첫 라운드부터 흑수저 요리사 60명을 떨어뜨리고, 곧바로 흑과 백 일대일 대결을 붙이며 무섭게 경쟁을 달군 '흑백요리사'는 50년 경력의 중화요리 대가 여경래 등 적지 않은 백수저 요리사들을 떨어뜨리며 긴장감을 높였다. 젊은 루키들의 패기와 선전에 박수를 보냈지만, 그렇다고 '빅네임드'들이 탈락하는 모습에 환호성을 친 것은 아니었다.
잠재력 있는 유망주나 재야의 숨은 달인을 새로 찾고 싶기도 하지만, 무림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쌓고 일가를 이룬 고수의 남다른 내공이 실재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파인 다이닝으로 이름을 드높인 것은 물론이고 오랜 방송 경력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스타 셰프 최현석이 탈락의 문턱까지 가는 것 같았던 4회 엔딩이 긴장감을 폭발시켰던 이유다.
요리 방송 마니아들에게는 추억이 된 케이블TV 올리브 채널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최현석은 이후 '한식대첩', '냉장고를 부탁해' 등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요리 권위자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무엇보다 화려한 요리 테크닉을 비롯해 훤칠한 키와 준수한 용모로 '화면발'을 제대로 받는 최현석은 입담까지 좋아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충분했다. 그런 최현석이 오랜만에 방송에서 요리 실력을 발휘하니 대중의 관심이 또 한 번 급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력으로는 한참 뒤처지는 신예 요리사 '원투쓰리'와 일대일 대결을 하면서 자신감을 피력할 때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턱선을 드러내고 팔짱을 찬 그의 모습이 어쩐지 꼰대와 고수의 경계에 서서 심판을 기다리는 듯하며 팬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이러한 반응과 극적인 효과를 충분히 예상한 제작진은 명운이 아슬아슬하게 갈렸던 여러 명의 백수저 요리사 중에서 굳이 최현석의 에피소드를 골라 '흑백요리사' 첫 공개일 마지막 편 엔딩으로 편집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스타 셰프 최현석의 행보를 일주일 동안 기다리게 하며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새로 공개한 에피소드에서는 최현석의 통쾌한 리더십 향연을 연출하며 팬들의 심박수를 높였다.
팀 대결이 된 세 번째 라운드에서 최현석은 철저히 팀원들에 의해 수장으로 선발됐다. 그러나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치 각본이 있었던 것처럼 최현석의, 최현석에 의한, 최현석을 위한 에피소드가 됐다.
앞서 리더십과 팀워크의 부재로 '백수저 팀 조은주'가 난관을 겪는 과정을 지켜본 '백수저 팀 최현석'은 최현석의 시원시원한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요리 솜씨를 발휘했다. 최현석은 자신보다도 경력이 더 오래된 에드워드 리, 안유성, 이영숙 등의 대가들 앞에서 흔들림 없는 통솔력을 보이며 팀원들에게 믿음을 줬다.
"리더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결연한 각오와 "셰프 위에 재료"라고 하는 등 그간의 노하우가 더해진 최현석의 확고한 리더십은 팀원들부터 시청자들까지 단번에 설득했다. 100인의 대중 평가단을 공략하는 만큼 '가자미 미역국' 같은 익숙한 한식의 맛으로 메뉴를 정한 뛰어난 판단력과 "초심으로 돌아가 오늘이 생일"이라는 스토리텔링까지 기가 막혔다.
게다가 그의 리더십에는 위트도 빠지지 않았다. 대파가 부족하다며 성큼성큼 상대팀으로 걸어가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재료를 빌리는 모습이 익살스러움 그 자체였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찾아가 결국 대파를 얻어온 최현석은 결단코 뻣뻣한 권위자일 수 없다. '재료가 없으면 없는 대로 한다'고, '비굴해 보이기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는 그러한 테두리에 스스로 가두지 않았다.
최현석의 내공이 선명하게 드러난 팀 대결은 그야말로 고수 최현석의 귀환이었다. '최현석은 최현석이구나' 하며 감탄하고 고개를 끄덕인 '흑백요리사' 팬들은 다른 고수들에 대한 기대감까지 높이게 됐다. 필시 대가의 반열에는 아무나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명인들에게 마음이 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이 억지스러운 권위가 싫은 것이지, 연륜과 내공이 싫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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