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 아티스트'와 '진짜 예술가'는 뭐가 다른가? [아트씽]
연예인·셀럽은 왜 아티스트가 되고싶은가?
예술적 성취도 이상의 큰 주목 받는 그들
예술의 전문성, 셀럽이라고 예외일 수 없어
예술가를 진짜 예술가로 만드는 '집요함'
요즘 연예인이나 셀럽(유명인사)이 전시를 여는 일이 종종 있다. 여기서 ‘종종’에는 ‘생각보다 많다’라는, 빈도수에 대한 주관적인 관점이 투영돼 있다. 창작의 장르 또한 다양하다. 회화,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사진 등 다양한 장르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를 연다. 그리고 그 전시들은 미디어에 쉽고 빠르게 노출되며 다시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셀럽들은 왜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할까? 그들이 생각하는 ‘아트’는 과연 무엇일까? 어떤 요건들이 그 ‘아트’에 충족할까? 이를테면, 배우의 본업은 영화나 드라마, OTT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가 갑자기 화가로 전향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연다고 치자. 화가로서 그의 경력을 현대미술 작가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신진작가는커녕 전공이나 경력이 전무한 아마추어 작가와 견줄 수 있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이미 부와 명성을 쌓은 배우가 굳이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가 배우로서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던 재능과 시간은 매우 치열했을 것이다. 현대미술 필드가 치열한 것처럼, 혹은 그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말이다. 그러나 배우는 그 명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아마추어 경력의 작가들은 상상할 수 없는 작가로서의 주목과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판매라는 현실적인 보상도 이루어진다. 역시 일반 아마추어 작가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불공정하다’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여 추적하고 싶은 것은 공정성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보다는 약간 요상한 징후, 셀럽 아티스트들이 그들의 ‘고상하고 유니크한 이미지를 배가 시켜줄 수 있는 부캐’를 대하는 태도이다. “나도 아티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외침을 증빙하기 위한, 처절한 안간힘과 방어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그들이 올려다보는 부캐의 최고 지향점은 무엇일까? 어떤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할까? 혹은 그렇다고 여겨질까?
작가로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티스트의 정체성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않는다. 그들이 셀렙 아티스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전공과 경력?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전문 작가에게 예술은 취미가 아닌 전문 분야이고, 자신만의 예술 스타일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래알처럼 많은 미술 학사와 석사, 박사 졸업생들에게 전공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전공을 하지 않고도 재능과 실력만으로 작가가 완성된 예외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셀렙 아티스트들은 그 ‘예외’에 해당할까?
세계적인 아티스트, 혹은 거장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긴 시간을 뚫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고 인정받는 작가들에게는 단순히 재능이나 학위 등의 기본 조건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하는데, 그 속성을 가만히 유추해 본다면 그 중 하나는 집요함이다. 아티스트 경력이 완성되는 수 십 년 동안, 혹은 그 이전의 과거와 역사를 거스르는 시간을 포함하여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다르게 바라보고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세월의 축적은 폭발적인 에너지, 신선한 스타일, 이미지의 반전, 새로운 아이디어, 유행하는 개념적 접근,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의 예술 전략과도 대체 불가능하다. 잠시 주목받을 수는 있어도 지속이 힘들기 때문이다. 어느 셀렙 아티스트가 몇 십 년 동안 예술 활동을 지속해 온다면 그에 대한 나의 인식과 평가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서도호 작가의 전시 ‘서도호: 스페큘레이션스’에는 익숙한 기존의 집 프로젝트 대신, 아이디어에 그쳤지만 완성되지 못했던 프로젝트의 에스키스, 모형, 영상 스케치, 프로젝트의 과정 등이 전시된다. 집 프로젝트가 선보인 시점이 20세기 말이니,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해 온 집요함과 몰랐던 프로젝트의 이면을 보게 된다. 런던과 뉴욕, 서울을 끊임없이 오가는 작가의 삶은 코스모폴리탄을 표방하는 디아스포라의 고단함과 그리움이 숙명적으로 따른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끊임없이 앞으로 전진하는 작가의 목표는 결국은, 자신의 본래 집터, 뿌리, 주춧돌, 고향으로 머물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찬숙 작가의 아트북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에도 작가의 20세기 드로잉 유물부터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존재’, 특히 여성 이주자들의 이야기에 집요할 정도의 집중력과 긴 시간을 쏟아 인터뷰를 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작업화한다. 그리고 결국은 개인의 정체성과 타인의 서사를 봉합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다면 그 집요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왜 그토록 긴 시간과 노력을 쏟는 것일까? 아마도, ‘마음’이 아닐까? 그것은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진부하지만 근원적인 물음을 외면하지 않고 추적하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마음, 그리움, 애틋함, 분노 등 세월이 흘러도 마모되지 않는 작가의 감정이 투영된, 무해하고 창의적인 방식, 그리고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예술가의 영혼으로 발현된다.
물론, 작가들도 작업으로 부와 명성의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꿈을 꾼다. 어느 분야든, 예술 분야도 예외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하면 표면 밑에 있는 심층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위해 용기 내어 속마음을 드러내고 영혼을 쏟고 희생하는 행위는 비단 예술이 아닌 다른 분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술가는 워낙 고매하고 특수하니 태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이 다르다는 주장이 아니다. 그냥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필자 조숙현은 현대미술 전문 출판사 아트북프레스(Art Book Press)를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영상 커뮤니케이션 석사를 졸업했고, 전시기획자와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내 인생에 한 번, 예술가로 살아보기’와 ‘서울 인디 예술 공간’이 있다.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 : 악의 사전’, ‘변덕스러운 부피와 두께’, ‘X-사랑’, ‘바로 오늘’, ‘Way of Life’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아트씽 기자 artseei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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