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프랜차이즈 공화국에 사는 '유령', 가맹지사

박수진 기자 2024. 9. 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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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공화국의 민낯 '법 밖의 가맹지사'③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몇 개가 있을까?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1만 2천 개를 넘어섰다. 이 브랜드를 운영하는 가맹본부, 즉 본사는 8천여 개, 이들에게 가맹비를 내고 사업권을 사서 점포를 운영하는 가맹점은 35만 여개에 달한다. 프랜차이즈, 즉 가맹 사업 형태의 사업 구조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인구 대비 규모로 보면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산업이 결코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은 전 세계에서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다. 2022년 기준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23.5%에 달한다. (미국은 같은 기간 6.6%였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특별한 노하우와 기술이 없어도 본사의 기술과 제품이 제공되고,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하단 점에서 많은 자영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자료사진) 지난 8월 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74회 프랜차이즈창업박람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정부 조사 어디에도 '가맹지사' 현황은 없다


공정위는 매년 국내 프랜차이즈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다. 하지만 이 공정위 조사를 포함해 경제단체, 프랜차이즈산업협회까지 어떤 조사에도 가맹지사 현황은 없다. 외식업계는 물론 교육, 택배, 세탁 등 산업 전반에서 가맹지사 방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에 몇 개의 가맹지사가 있는지, 얼마나 많은 브랜드가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 중인지 파악된 자료는 없다. 취재 중 만난 한 가맹지사장은 기자에게 "대한민국에 프랜차이즈가 정말 많지만 가맹지사는 늘 보이지 않는다. 유령 같은 존재"라고 털어놨다.

기자도 이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진 가맹지사가 가맹본부, 즉 본사가 각 지역에 둔 지역 사무실인줄 알았다. 일반 소비자 눈에 가맹지사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본사 대신 가맹점을 모집 관리하고, 또 가맹점 확장을 위해 영업과 마케팅도 자체적으로 한다. 본사는 이런 홍보비용을 대부분은 지원하지 않는다. 가맹점에 교재, 식자재 등 물건을 판 수익의 일부를 떼어주는, 그러니까 수익을 일부 공유하는 '사업 파트너' 관계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앞서 떡볶이 프랜차이즈와 영어학원 프랜차이즈 사례에서도 봤던 것처럼 이들의 계약 관계는 대부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계약 기간을 보호받지 못하고, 본사가 계약을 해지하는 사유는 가득하지만 가맹지사가 계약 해지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는 대부분 없다. 본사와의 관계에서 가맹점과 마찬가지로 '을'이지만 가맹점은 가맹사업법의 보호를 받고 가맹지사는 그렇지 못하다.

본사와 가맹지사의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 걸까


당연히 본사와 가맹지사가 그 관계를 무조건 이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 둘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은 비즈니스 파트너인 만큼 계약이 종료될 수도 있다. 본사의 사업 방침 변화에 따라 가맹지사를 줄일 수도 또는 늘릴 수도 있고, 가맹지사장을 교체할 수도 있다. 이별은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이별하느냐에 있다. 기자가 취재한 떡볶이 프랜차이즈 회사, 영어학원 프랜차이즈 회사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맹지사가 계약에 위반한 행위를 했다며 그 행위를 이유로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해 왔다. 하지만 본사는 이 '위반 행위'에 대해 사전에 시정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시정 요구와 계약 해지 통보가 동시에 온 셈이다. 가맹사업법은 해지보단 시정을 우선으로 하고 있고, 2회 이상 서면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여러 번 말했듯 이 내용은 가맹지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위반 행위에 대한 본사와 가맹지사의 의견이 다르다. 분쟁과 공방의 영역이지만, 사실관계를 따지려면 법적 대응이 필요하고 법적 대응과 무관하게 계약 만료일이 넘어가면 계약은 종료된다.

이런 경우도 있다. 계약이 종료된 후 본사는 해당 지역에 지사를 두는 대신 직영화를 하기도 한다. 지사에 더 이상 수익을 떼어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맹점 모집과 관리, 이를 위한 영업은 오롯이 가맹지사의 몫이었다. 가맹지사 입장에선 자신이 애써 일궈놓은 자산을 그냥 빼앗긴다고 여긴다. 직영화 대신 다른 사람에게 가맹지사를 넘기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경우 본사는 후임 가맹지사장으로부터 또 가맹비를 받게 된다. 직영화를 하든 새 가맹지사장을 세우든 본사는 이익을 얻고 가맹지사는 손해를 보는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계약 해지로 인해 예상되는 손해, 또 계약을 유지했다면 발생했을 수익, 또 가맹지사로 활동하며 이제껏 들였던 투자금의 회수 등을 고려해 적당한 배상금을 지불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아름다운 이별 방법'이다. 최근 한 유명 치킨 브랜드는 전국의 가맹지사를 직영화하는 과정에서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사정이 어렵다고 주장한 일부 가맹지사장은 직원으로 흡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 때문에 해당 분기 실적은 적자가 나기도 했다. 적자를 감수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한 사례인데, 안타깝게도 흔한 사례는 아니다.

가맹지사를 보호하는 법은 왜 아직까지 없을까


가맹지사에 대한 법의 보호가 필요하단 이야기는 지난 2022년부터 국회를 시작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경기도에서 교육, 세탁업계에 한정해 지사 관련 실태조사를 한 바 있고 앞서 언급한 쎈수학의 사례처럼 일부 프랜차이즈 학원 업체를 중심으로 가맹지사 계약해지 과정의 불공정 문제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가맹사업거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정무위 검토보고서를 보면 "가맹거래사업이 본부-가맹지사-가맹점'의 구조로 운영되는 경우 가맹본부의 우월적 지위 남용으로 인한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보호규정이 없어 이 법을 통한 구제가 쉽지 않다""가맹지사 또한 현행법에 따른 보호대상임을 이 법에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가맹지사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입법"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결국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21대 국회 말미에 여야의 치열한 정쟁이 있었고, 이 법에 함께 포함된 가맹점주단체의 대화 요구에 본사가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 내용 등에 여야 이견이 발생하면서 폐기 됐다.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가맹지사를 가맹점에 준해 보호하는 내용에 대해 "가맹지역본부에 대한 가맹본부의 불공정한 행위의 경우 공정거래법 등 기본 법체계를 통해 분쟁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며 "현행 법령을 유지하며 표준계약서 개발 등으로 업계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신중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 관계 당국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 담당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현행 가맹사업법의 적용 대상에 가맹지사가 포함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두터운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관련 간담회에 참석한 공정위 관계자는 가맹사업법 적용 대상을 가맹지사까지 넓히는 것에 대해서 찬성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22대 국회에도 민주당 민병덕, 김한규 의원이 가맹지사를 보호하는 내용의 가맹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과연 22대 국회에선 이 법이 통과될 수 있을까? '찢어진 우산이라도 씌워달라'는 가맹지사장들의 호소가 과연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 [취재파일] "신뢰 깨졌다" 한 마디에 '14년 사업'이 날아갔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799202]
▶ [취재파일] '찢어진 우산'도 허락되지 않았다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7812823]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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