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 자질 못갖춘 2인자의 삶은 고단[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024. 9. 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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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2인자
■ 삼국지
야심 가득 조조, 늘 1인자처럼 행동… ‘간악한 영웅’평가
충성스런 제갈량, 2인자 역할 충실… ‘공명정대’칭송받아
게티이미지뱅크

소설 ‘삼국지’ 덕분에 조조는 ‘간웅’, 곧 간악한 영웅으로 널리 알려졌다. 반면 유비의 책사인 제갈량은 공명정대한 인물로 널리 칭송된다. 흥미로운 점은 삼국지에서 목도되는 이 두 사람은 무척 닮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역량 면에서 이 둘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니까 역량 면에서 차이도 없고 여러모로 많이 닮았음에도 한 사람은 간악한 인물로 평가되고, 다른 한 사람은 바르고 올곧은 이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소설 속 조조와 제갈량은 역량 면에서는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똑같이 빼어났다. 둘 다 전략 전술의 귀재이고 장수와 병사를 부리는 데 천부적 자질을 지녔다. 인재를 잘 볼 줄 알아 그들을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배치했고, 사람의 심리 파악에 능하고 상황과 맥락을 읽어내는 솜씨는 가히 달인이었다. 정치적 역량 또한 뛰어나서 내정과 외교 모두에서 발군이었다. 그래서 이 둘의 수하들은 늘 그들의 역량에 감탄하며 하늘이 낸 재주라며 줄곧 상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조조는 매우 미워하고 제갈량은 마냥 좋아한다. 이 둘은 잘난 체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 자신의 계책대로 전투가 벌어져 승리라도 하게 되면 공치사를 신나게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공치사를 해대는 조조의 모습에서는 간사함을 읽어내고, 똑같이 공치사에 여념 없는 제갈량에게서는 멋짐을 읽어낸다. 조조는 대체 무슨 미운털이 박혔기에 그런 대접을 받고, 제갈량은 또 무슨 예쁜털이 박혔기에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인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조조는 시종일관 1인자를 꿈꿨다는 것이고, 제갈량은 절대로 1인자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조는 야망이 엄청 컸던 야심가였다. 결코 2인자에 만족할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는 천자라고도 불리는 황제가 천하의 1인자였고 공(公)이라 불리는 제후급 인사가 2인자였다. 조조는 ‘위공’으로 불리며 제후급에 올랐다. 명실상부하게 2인자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늘 황제의 자리로 가득 차 있었다. 여러 이유로 그러한 야망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에 비해 제갈량의 마음에는 주군인 유비에 대한 충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여 유비가 임종 직전에 자기 아들 유선이 섬길 만하면 섬기고, 황제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제갈량 당신이 황제를 하라고 유언했음에도 제갈량은 끝까지 못난 유선을 황제로서 깍듯이 섬겼다. 제갈량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은 1인자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여겼던 듯하다. 반면에 조조는 자신이 1인자가 되고도 남을 자질을 지녔다고 판단하여, 대세를 장악한 이후에는 황제 앞에서조차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등 늘 1인자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소설에서 조조는 1인자가 될 만한 덕목과 역량이 꽤 부족했다. 흥미롭게도 이는 제갈량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 역량이 빼어난 인재들이었지만 그 둘에게는 공통적으로 1인자가 될 만한 자질이 부족했다. 이를테면 유비가 지닌 어짊과 후덕함, 포용력 등이 이들에게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갈량은 자신의 위상을 2인자로 한정하여 2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조조는 끊임없이 1인자가 되고자 애썼다. 독자들은 이러한 조조의 모습에서 간악함을 느꼈고 반대로 제갈량의 모습에서는 충직함을 느꼈다. 그 결과 역량 등이 무척 유사했음에도 한 사람은 손가락질당하고 한 사람은 칭송을 받게 되었다.

역사가 밝히 말해주듯이 2인자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소설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인자라는 자리에 있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게다. 더구나 현재의 1인자가 1인자로서 갖춰야 할 역량과 덕목을 못 갖추고 있다면, 조조 같은 2인자는 물론이고 제갈량 같은 2인자조차 좋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사뭇 낮다. 그러니 1인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2인자의 삶이 더욱 고단할 수밖에 없음은 말 그대로 자명하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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