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떠오른 태양은 언젠가는 지는 법[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2024. 9. 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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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로마 1인자 술라 앞에 스물넷 정치 신인 폼페이우스 등장
개선식 세 번 치르며 권력 정점 올랐지만 카이사르에 무너져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지는 해보다는 떠오르는 해를 더 존경합니다.” 스물네 살의 폼페이우스(BC 106∼48)는 당시 로마의 최고 실력자 술라(BC 138∼78) 앞에서 이렇게 거침없이 말했다. 술라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의 기세와 대담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 그의 개선식을 치러주어라, 개선식을 치르라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크게 외쳤다. 당시 로마에서는 집정관이나 법정관의 직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선 아무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도 개선식을 치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폼페이우스는 원로원 의원도 아니었다. 새파란 정치적 신인! 그러나 소아시아의 반란을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싸우는 족족 그 나이에 믿기 어려운 승리를 거둔 폼페이우스를 술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 위대한 폼페이우스!”라고 부를 정도였다.

일찍부터 그의 능력을 알아본 술라는 폼페이우스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었다. 기혼자였던 폼페이우스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자기 의붓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았고, 나이에 비해 과분한 군사적 직책과 권한을 부여하며 그를 등용했다. 폼페이우스는 술라의 기대에 부응했다. 폼페이우스는 그 이후에도 승승장구하며 술라의 정치적, 군사적 방해물들을 성공적으로 제거했고, 두 번이나 더 개선식을 치르는 초유의 업적을 이루었다. 술라가 로마의 1인자로 위세를 떨쳤던 데에는 2인자로서의 폼페이우스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로마는 공화정 체제였다. 기원전 753년 신화적인 인물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우고 왕이 되어 통치하였지만, 왕정의 독재적 횡포에 저항한 로마인들은 로마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 선언하며 공화정을 수립하고, 최고 지위인 집정관을 두 명을 두어 서로 협조하며 견제하도록 하는 등, 독재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 제도를 만들었다. 공화정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했고, 동으로 그리스를, 서쪽으로 카르타고를 제압하며 지중해의 패권자로 우뚝 서더니, 북쪽으로는 갈리아인들의 땅(지금의 프랑스, 벨기에 등)을 정복하며 그야말로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 최전선에 폼페이우스가 있었던 것이다.

폼페이우스의 기념비적인 개선식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묘사에 따르면, 그의 업적을 기록한 명패가 먼저 들어왔는데,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세 개 대륙에 걸쳐 1000개가 넘는 지역을 정복하고 900개의 도시를 함락했으며, 포획한 해적선은 800척에 이르고, 39개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의 비교 대상은 로마 역사 속에서는 찾을 수 없고, 먼 옛날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만이 유일하다. 플루타르코스는 폼페이우스가 공화정을 뒤엎고 군주가 되려고 했다면 그의 능력과 업적에 환호하는 민중의 지지를 받아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고 황제로 등극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논평했다. 술라의 곁에서 2인자로 시작한 폼페이우스의 위세는 그가 예고한 대로 떠오르는 태양으로서 술라를 압도하며 찬란하고 강렬했다.

카이사르(BC 100∼44)가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며 군대를 이끌고 불법적으로 로마로 돌진해야만 하는 결단을 내린 것은 역설적으로 폼페이우스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 당시 카이사르도 갈리아 땅을 정복하며 대단한 업적을 이루긴 했지만, 폼페이우스의 정치적인 영향력과 비교하면 열세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폼페이우스에게는 이제 지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로마공화정 체제에서 초유의 삼두정치를 펼치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가운데 명실공히 1인자였던 폼페이우스는 새롭게 떠오른 2인자 카이사르가 죽기 살기로 돌진하자, 속절없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한번 떠오른 태양은 언젠가는 지는 법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빛나는 1인자나, 떠오르는 2인자 모두가 이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음에 깊게 새긴다면, 다른 모든 이들을 고통의 격랑 속으로 몰아넣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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