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클로저 [건강한겨레]

한겨레 2024. 9. 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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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더 전인 1920년 5월10일, 동아일보에 실린 글을 소개한다.

춘원 이광수의 아내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개원 여의사였던 허영숙이 쓴 글의 일부분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물론 그동안 항생제가 개발돼 대부분의 성병은 완치가 가능해졌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제공하여 성병을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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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나면 건강해지는 ‘성’ 이야기
삽화=김대중

100년도 더 전인 1920년 5월10일, 동아일보에 실린 글을 소개한다. 춘원 이광수의 아내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개원 여의사였던 허영숙이 쓴 글의 일부분이다. 여기서 화류병자란 현재의 성병 감염자를 뜻한다.

‘화류병자의 혼인을 금할 일’

(전략) 우리 사회가 금일까지 행해온 여러 가지 폐해는 하루아침에 제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올시다. 그중에서도 지금 당장 개선해야 할 문제 중 가장 시급하고 두려운 것은 화류병자의 결혼이올시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청백하고 순결한 남의 자녀를 망치며, 그 해악이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실로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중략) 한 번 화류병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 결혼을 금지하는 제재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략)

그런데 지금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물론 그동안 항생제가 개발돼 대부분의 성병은 완치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던 바이러스성 성병들이 계속 등장했으며, 일부는 완치 방법이 없어 상황의 심각성은 여전하다.

치료가 가능한 성병은 치료 뒤에 성관계를 맺거나 결혼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으로도 불치의 성병을 앓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나의 감염성 질환을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지’, 영어로는 ‘디스클로저(Disclosure)라고 한다. 힘든 일이겠지만 서로의 건강과 신뢰를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성을 통해 전파되는 질병 중 완고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본다. 가장 흔한 것은 생식기 포진으로 알려진 ‘HSV-2’ 감염이다. 현재로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국 젊은이의 약 10~20%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적으로도 약 13%가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질환은 평생에 걸쳐 반복적으로 재발하여 고생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 피로할 때 입술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HSV-1’은 세계인의 90% 가까이가 감염돼 있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본다. 단, 입가에 병변이 있을 때는 구강성교를 피해야 한다. 교차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체 유두종 바이러스’(HPV)는 콘딜로마(곤지름)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치료가 쉽지 않지만 대부분 2년 이내에 자연 치유되므로 HSV-2보다는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여성이 예방 접종을 받지 않았다면 이를 알려야 한다. 에이즈(HIV)의 경우 이를 숨기고 성관계를 맺어 병을 전파하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에이즈예방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B형과 C형 간염도 중요한 문제다. 둘 다 완치가 어려운 질병이므로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 다만, B형 간염은 한국인 대부분이 예방 접종을 하여 면역이 있으므로 상대가 외국인이 아니라면 예외로 볼 수도 있다. 간혹 완치된 매독 환자 중에 혈청검사가 계속 양성으로 나와 당황하는 경우도 있는데 감염성이 없다면 굳이 고백할 필요는 없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제공하여 성병을 예방하고 최소화하는 것이다. 포괄적 성교육을 찬성한다. 계속 쉬쉬하며 성교육을 방해하는 부모들은 역사 속에서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지 의문이다.

김원회 부산대 명예교수, 대한성학회 초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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