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이임보·진회, 나라 망친 간신… "천하 망치는 건 소인 하나면 족해"
"나라를 열고 집안을 잇는데 소인을 써서는 안된다"
간신의 발호는 망국의 징조… 국민이 깨어 있어야
천하의 절세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당 현종은 즉위 초기만 해도 '개원의 치'(개원지치·開元之治)라고 해서 태평 성태를 연 성군(聖君)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재상 요숭과 송경 등 유능한 관리를 등용하고 상벌을 엄정히 했으며, 어진 정치를 통해 애민 정신을 실천했다. 그랬던 그가 망가지고 종내 망국의 길로 향한 것은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사한 신하(간신·奸臣) 때문이다. 이임보는 음험하고 책략이 많아, '입에는 꿀, 뱃속에는 칼'(구밀복검·口蜜腹劍)을 가진 사람이었다. 말은 유려했지만, 가슴에는 잔악한 칼을 품은 그는 장장 19년동안 재상 자리를 지키며 당 제국을 사양의 길로 이끌었다. 이임보는 현종의 기분과 의중을 잘 아는 내시와 후궁들을 이용,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현종을 사로잡았지만 학문은 형편없고 경박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학문이 깊고, 식견이 높은 인재를 미워하고 질투했다. 장구령과 같은 수많은 인재와 충신들은 그의 참언에 쫓겨나고 죽음에 이르러야 했다.
명말 청초의 학자였던 고염무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부불즉무소불위·不恥則無所不爲)라고 했다. 아무리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이라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언제든 간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간신·소인배들은 사회 혼란을 부추기고, 난세를 만든다. 백성의 피와 땀으로 공을 세우려 하며, 백성의 목숨을 들풀만도 못하게 여긴다.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동양 정치철학에선 간신을 잘 구별해 쓰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간신이란 망령은 배회하는 법이다. 간신들도 생각과 뜻이 남달리 깊고, 아주 먼곳까지 내다보는 뛰어난 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충신과 인재들이 이들과 싸워 패한 것은 간신들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간신은 반드시 알아야만 대비할 수 있고, 반드시 없애야만 끝낼 수 있다. 모르면 방자해지고, 없애지 않으면 멋대로 설친다"(육반·六反)고 강조한다.
◇간신 감별법… '지인지감'(知人之鑑)의 중요성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그 옛날 장자(莊子)도 "무릇 인간의 마음이란 산천보다도 위험하며, 하늘을 아는 것보다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다. 간사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겉과 속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북송 시대의 문인인 소순은 '변간론'(辨奸論)에서 간(奸)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을 자세하게 살핀다. 그가 파악한 간사한 사람은 △세상 인심을 노련하게 파악하고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하며 △사람을 잘 구슬리고 △말재주가 뛰어나며 △분위기를 살피는 데 능숙하다.
문왕,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한 일등공신인 강태공은 병법서 '육도'(六韜)에서 "겉모습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틀림없이 실수를 범한다"고 경고하며 사람 보는 여덟가지 방법(8징법·八徵法)을 제시한다. 첫째 질문을 하고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살피고, 둘째 꼬치꼬치 캐물어 반응을 살핀다. 셋째 첩자를 보내 유인해 그 성실성을 보고, 넷째 비밀을 털어놓고 인물 됨됨이를 살핀다. 다섯째 재정을 맡겨 정직한지 알아보고, 여섯째 여자를 접근시켜 강직함을 살핀다. 일곱째 힘든 일을 주고 용기가 있는지 보고, 여덟째 술을 먹여 술 버릇을 살핀다.
육도은 이런 사람 보는 안목을 근거로 등용하지 말아야 할 사람 7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첫째 지혜와 계책 없이 허풍만 떠는 사람, 둘째 평판과는 다르게 실력이 없고 변덕이 죽 끓듯 하며 이기적인 사람, 셋째 욕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명예와 재물욕이 강한 사람, 넷째 교양을 과시하고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남을 비판하는 사람, 다섯째 확고한 견식이 없고 주위 상황에 맞춰 눈에 보이는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 여섯째 취미나 향락에 빠져 직무를 소홀히 하는 사람, 일곱째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 등이다.
'8징법'은 제갈량이 인재를 알아보는 7가지 방법(칠관·七觀)과도 유사하다. 제갈량은 옳고 그른 것에 관해 물어 그 뜻을 살핌으로써 시비를 가르는 능력을 보고, 궁지에 몰아 변화를 관찰해 임기응변할 수 있는 능력을 살펴야 한다고 했다. 책략 따위를 자문해 식견을 보며, 위기상황을 알려 난관에 맞설 용기가 있는지 본다. 술에 취하게 하여 본성을 관찰하며, 이익을 제시해 청렴 여부를 살핀다. 마지막으로 일을 맡겨 신용이 어떤가를 본다.
◇간신의 특징과 권력을 장악하는 수법
명나라 시대 충신 양계성은 간신 엄숭의 죄악과 그 간행을 '십죄상'(十罪狀·열가지 죄상) '오간재'(五奸才·다섯가지 간행)로 요약했는데, 간신이 권력을 장악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먼저 황제의 측근을 뇌물로 매수해 자신의 첩자로 만든다. 통정사를 조종해 자신의 앞잡이로 만들며, 창위관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자신에게 필요한 끈으로 만든다. 이어 언관을 농락해 자신의 노예로 하고, 자신을 따르는 신하들을 모아 심복으로 만든다.
김영수·김경원이 지은 '간신열전'은 좀 더 구체적인 특징과 이들의 수법을 나열한다. 은근하게 떠받들어 친근함을 얻고, 상사의 비위를 맞춰 귀여움을 차지한다. 겉으로 충성심을 나타내 신임을 얻고, 간사한 아부로 환심을 산다. 은혜를 베풀어 지지를 얻고, 자신의 권세를 과시해 패거리를 모은다. 살인으로 권위를 세워 존경과 두려움을 사며, 이간질을 밥먹듯 하고 거짓말로 사람을 해친다. 곁으로 치켜세우지만 속으로는 끌어내리고, 음모로 사람을 해친다. 이밖에 죄를 뒤집어 씌우고 함정을 파서 사람을 해치며 악독한 말로 중상모략하며, 잘못을 폭로하고 못난 점을 떠벌리며 기회를 보아 사람을 조종한다.
거짓은 간신의 가장 기본적 특징 중 하나다. 간신은 충성스럽고 성실한 척, 점잖고 너그러운 척 한다. 멍청하고 어리석으며, 때론 똑똑하고 많이 아는 척 한다. 이처럼 간신이 위장하는 이유는 환심을 사고, 인심을 얻고, 못된 마음을 포장하기 위해서다
◇간신의 종류… 중국 역사속 간신들
전한(前漢)말 유향(劉向)은 '설원'(說苑)에서 각각 여섯 종류의 바른 신하(육정·六正)와 해로운 신하(육사·六邪)를 설명한다. '육정'은 △성신(聖臣,성스러운 신하) △양신(良臣, 선량한 신하) △충신(忠臣, 충성스런 신하) △지신(智臣, 지혜로운 신하) △정신(貞臣, 곧은 신하) △직신(直臣, 바른 신하)을 말한다.
'육사'는 △구신(具臣, 자리만 차지하는 신하) △유신(諛臣, 아첨하는 신하) △간신(奸臣, 간사한 신하) △참신(讒臣, 중상모략하는 신하) △적신(賊臣, 자리를 도적질하는 신하) △망국지신(亡國之臣, 나라를 망치는 신하)이다. 여기에 △군주를 시해한 역신(逆臣) △군주를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른 권간(權奸) △교묘한 말로 군주의 귀와 눈을 멀게 하는 영신(녕臣)도 간신의 유형으로 꼽을 수 있다.
일찍이 공자는 간신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통치자는 이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사람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 달변인 사람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사람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사람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그들이다.
중국사에서 가장 더러운 이름을 날린 세명의 재상이 꼽히는 데 당 왕조때 '구밀복검'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이임보, 남송 휘종 시대 명장 악비를 죽인 매국 간신 진회, 그리고 명 왕조때 엄숭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3대 간상'(奸相)으로 꼽힌다. 악비는 금나라에 대항해 싸웠던 남송의 명장이다. 하지만 금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한 재상 진회에 의해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된다.
오왕 부차를 망하게 한 춘추전국시대 백비도 간신이다. 그는 초나라 출신으로, 오나라로 피신한다. 같은 초나라 출신이자 오나라로 피신온 오자서가 동병상련을 느껴 그를 중용했지만 결국 오나라를 망하게 한 만악의 근원이다. 월나라 왕 구천은 그를 철저히 이용해 경쟁국인 오나라를 무너뜨린 후 오자서를 위해 복수한다는 명목으로 백비를 처형해버린다.
수초, 역아, 개방는 제나라의 '삼흉'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아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을 의미)의 주인공인 포숙아가 죽은 후 제환공의 총애를 받아 국정을 좌지우지한 끝에 마지막에는 환공을 유폐시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한나라 말 영제(靈帝) 시절의 환관이었던 십상시(十常侍) 장양, 조충, 하운, 곽승, 손장, 필람, 율숭, 단규, 고망, 장공, 한리, 송전 등은 중국 무협에도 자주 등장하는 간신이다.
이밖에 이임보와 같은 시기의 양국충, 명나라 위충현 등도 희대의 간신으로 악명을 떨쳤다.
◇간신 을 물리치는 방법 … 국민이 깨어 있어야
공을 탐내고 잘못은 숨기며, 죄와 책임을 남에게 미룬다. 세상을 속여 이름을 훔치며, 공로는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간신은 모두 말을 잘하고, 지식이 많으며, 총명하지만 진실성이 없다. 간신의 뒤에는 언제나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가 있다. 그래서 "간신은 만들어진다"고 한다. 세종 때 편찬한 '고려사' 열전의 '간신' 편은 서문에서 임금의 책임을 분명히 밝힌다. '세상에 일찍이 간신이 없었던 적이 없지만 오직 임금이 눈 밝음(명·明)으로 밝게 찾아내고(조·照) 잘 제어해(어·馭) 바른 길로 갈 때에만 그들이 간신술을 부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임금이 그들의 술책에 빠지면 왕왕 나라는 위태로워지고 임금은 자신을 망치게 된다고 고려사는 경고한다.
간신에도 등급이 있으니 크게 악랄하고 음험한 간신이 세를 얻었다면 임금이 크게 어두운 것이고, 덜 악랄하고 덜 음험한 간신이 있었다는 것은 임금이 덜 어두운 것이다. 그래서 특정 시대 간신의 패악질 수준만 살펴도 그 시대가 난세인지 치세인지 분간할 수 있다. 순자는 "명철한 임금이 상을 주는 사람을 어리석은 임금은 벌을 주고, 어리석은 임금이 상을 주는 사람을 명철한 임금은 죽인다"고 했다.
간신을 막겠다는 마음을 기르고, 물리칠 수 있는 덕을 키워야 한다. 간신을 살필 수 있는 지혜와, 간신과 싸우는 용기·기술을 키워야 한다. 미미한 싹이라도 잘 살펴 사악한 쪽으로 흐르지 않도록 미리 잘라야 한다. 충신과 간신은 군주(리더)가 만들며, 리더의 밝음(명·明)과 굳셈(강·剛)만이 간신의 발호를 막을 수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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