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믿은 잘못 밖에 없는데···” 거리로 나선 사전청약 당첨자들
26일 오후 경기 파주시 동패동 운정중앙공원 메인무대에 파주시립예술단 남성중창단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민들과 파주시 관계자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은 하나 둘 자리잡고 공연을 관람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파주시가 주최한 ‘파주가든 시민축제’ 개막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축제를 마냥 즐길 수 없는 30여 명의 사람들도 있었다. 파주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다.
이들은 ‘나라에서 만든 제도, 나라에서 책임져라’ ‘당첨권리 승계’ ‘사전청약 당첨자 2년의 기다림 문자 한통으로 날라간 내집 마련의 꿈’ 등 문구가 적힌 준비한 플래카드와 풍선을 들고 축제현장을 지켰다.
플래카드를 든 그들 뒤로 흙만 가득한 빈 땅이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신축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어야 할 파주운정3지구 3·4블록 땅이다.
집회에 참석한 A씨는 “계획대로라면 나는 여기서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저기서 내집 앞 가든축제를 보고 있었을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민들이 축제공연을 지켜보는 동안 이들은 집회 현장을 지키는 경찰에게 이리저리 쫓겨다녔다. A씨는 “시위가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집회 참석자 가운데는 젊은 신혼부부와 노부부, 갓난아이를 안고 온 엄마도 있었다.
공공청약과 달리 민간청약의 경우 사전청약에 당첨돼도 본청약 당첨과 동일하게 청약통장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한다. 민간건설사의 수익보전 및 청약자 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이탈은 커녕 2년간 본청약만 기다리던 사람에게는 이 조치가 독이 돼 돌아왔다.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지난 2년간 다른 민간분양 시장에 청약을 할 수 없었다.
청약통장도 못 쓰고 기다린 2년
졸지에 사전청약 당첨자 자격을 잃은 이들은 정부와 국회에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뚜렷한 구제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사전청약 당첨자 B씨는 “평생 시위라는 건 해본 적도 없는 직장인들이 이렇게 집회에 나와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간절한 문제”라고 말했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파주 갑을)이 추석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전청약 취소단지 당첨자들에 대해 동일부지 당첨권 지위를 유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현재 해당 안건은 국회의원 소개청원으로 소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회의적인 목소리도 높다. 문재인 정부에서 시행한 사전청약 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야당 의원이 어디까지 끌고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파주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의 요구는 당첨자 지위를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것 하나다.
해당 부지에 새로운 민간 사업자가 나오거나 정부가 공공분양으로 전환하더라도 당첨자 지위를 유지해 입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사전청약 당첨자 C씨는 “지난 2년간 우리가 입은 유·무형의 피해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향후 아파트가 지어졌을 때 입주 자격을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주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운정역에 인접한 초역세권 입지다. LH가 공급한 택지 가운데 사업성이 있는 블록 중 한 곳이다.
DS네트웍스는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해당 부지를 4550억원에 사들인 뒤 이듬해 6월 총 804가구에 대한 민간 사전청약을 진행했다.
문제는 해당 부지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업자가 분양가를 상한선에 가장 근접하게 받더라도 주택 분양만으로는 사업비를 모두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이었다. 당시(2021~2022년)에도 건설업계에서는 주상복합 상업시설 매각을 통해 사업비 회수가 모두 가능할 것인가를 놓고 회의적인 전망이 나왔다. 이후 급격한 건설경기 하락과 공사비 급등으로 DS네트웍스는 끝내 시공사를 찾지 못하고 사업을 중단했다. 사업을 포기하는 게 계속 진행하는 것보다 이득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 모든 피해는 사전청약 당첨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사전청약 제도는 대선을 앞둔 문재인 정부가 ‘선거용’으로 만든 부동산 정책에 가까웠다.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당장 물리적 공급을 늘릴 수는 없으니 청약수요만이라도 미리 잡아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의도로 내놓은 것이 사전청약 제도였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5월 이 제도를 폐지했다.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 “지위 승계해달라”
올해만 사전청약이 취소된 단지는 6곳에 달한다. 인천 가정2지구 2블록 우미린,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용지 3·4블록, 경북 밀양 부북지구 제일풍경채 S-1블록, 경기 화성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 리젠시빌란트, 인천 영종하늘도시 영종A41블록 ‘한신더휴’ 등이다. 올해 예정된 본청약 일정을 연기한 단지도 13개 단지에 달해 취소단지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LH는 DS네트웍스로부터 해당 부지를 반환받은 이후 지난 7월31일 재공급 공고를 냈으나,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의 반발에 기존 재공급 계획을 철회하고 현재까지 공고를 내지 않고 있다. 올해 11월 안에 재공고가 날 것이라는 얘기도 떠돈다.
LH 관계자는 “민간 사전청약이 취소된 용지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재매각 또는 공공전환 등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은 LH의 재공급 공고로 새로운 시행사가 나타나기 전에 정부로부터 해결책을 받아내지 못하면 자신들의 당첨자 지위 유지 요구 자체가 백지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민간 사업자의 사업포기로 당첨자 지위를 상실한 경우 새로운 민간사업자가 이전 당첨자의 지위를 승계해야 할 어떤 법적 근거가 없다.
정부는 공공 사전청약 당첨자들에 대해서는 사업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본청약 및 입주까지 모두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에 대해서는 구제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간 사전청약 당첨으로 인해 효력을 상실했던 청약통장을 되살려주는 것 외에 정부가 해줄 구제책은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첨자격이 취소된 사전청약 당첨자들에 대해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부가 ‘당첨자 지위를 승계해주겠다’라고 확답하는 것도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정부가 당첨 취소자 200명의 지위를 승계하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후속 민간사업자가 ‘우리는 사업모델을 구상해보니 중대형 평형 150세대만 조성하려 한다’라고 하면 그것을 공공이 200세대로 늘리라고 강제할 수 있겠느냐”며 “승계해주겠다는 약속 자체도 당첨 취소자들에게는 희망고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은 사전청약은 ‘사전예약’ 이상의 효력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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