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1대에 5명이 타고 북부로…공포 질린 레바논 주민들 수만명 피란 중

최우리 기자 2024. 9. 2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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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 집중 남부에서 수만명 이동
수도 베이루트에서 다시 북부로
일부는 13년 내전 시리아로 넘어가
이스라엘군의 레바논 폭격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레바논 남부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리는 그냥 도망쳐야만 했어요.”

26일(현지시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로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피해 오토바이 1대를 타고 도망 온 가족 5명은 이렇게 말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빠 앞에 막내로 보이는 아들이 타고 아빠 뒤로 아들, 뒷좌석에는 엄마, 맨 마지막에 다시 아들이 샌드위치처럼 포개져, 좁은 오토바이에 온 가족이 몸을 실었다. 오토바이에 살림살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레바논 남부 지역 마을에서 출발한 가족은 베이루트를 거쳐 북부 도시 트리폴리로 향하고 있다. 이스라엘 북부와 레바논 남부는 국경을 접한다. 23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위협을 제거하겠다며 시작한 융단폭격 이후 새로 피란한 수만명 중 일부다. ▶관련기사 3면

가족은 수도에 간신히 도착했지만 베이루트도 이스라엘군의 공습에서 안전하지 못하다. 베이루트 주민과 베이루트에 도착한 남부 피란민이 더 북쪽으로 떠나면서 레바논 전역에서 피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차량이 없는 이들은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서라도 이스라엘 국경으로부터 멀리 가려 한다.

레바논 남부 해변 휴양지 지야 빈트즈바일 마을에 사는 알리(72)도 피란에 나섰다. 그는 비비시에 “베이루트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내, 두 딸과 세명의 손주와 함께 마을을 떠난 지 18시간 만에 베이루트의 학교에 도착했다. 레바논 정부는 학교를 남쪽에서 피란 온 사람들을 위한 대피소로 지정했다.

베이루트 대피소에 도착한 아흐마드 이사(33)와 가족들도 도로 위에서만 20시간을 보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보통은 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피란 가는 사람들이 몰리며 평소보다 10배가 더 걸렸다. 레바논 남부 마지디야 마을의 집을 떠나왔다는 이들 역시 베이루트 대피소가 아닌 새로 찾아갈 곳을 찾고 있었다.

레바논에서 피란한 이들이 시리아 국경 검문소에 몰려 있다. AFP 연합뉴스

레바논 보건부는 26일 전날 이스라엘 공습으로 81명이 사망하고 4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위협을 뿌리 뽑겠다며 23일부터 레바논 곳곳을 융단폭격한 뒤 레바논 사망자는 600명을 넘었다고 레바논 당국자들은 말했다. 레바논 주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레바논 피란민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 사이 국경지대 중심 충돌로 이미 레바논에서 11만여명이 피란 중이었는데, 23일 이스라엘군 융단폭격 이후 피란민이 급격히 늘었다. 압둘라 부하비브 레바논 외교장관은 지난 24일 피란민이 50만명 가까이 된다고도 주장했다.

심지어 일부는 2011년 이후 13년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로 피란을 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에 짐을 가득 실은 수백대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다고 밝혔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번주에 국경 검문소를 통해 레바논에서 시리아로 들어온 이들만 2만2천명 이상이라고 시리아 보안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레바논인 6천명 이상과 시리아인 약 1만5천명이 시리아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시리아 국외 난민은 약 500만명 이상으로 이 중 140만명이 레바논에 머물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여성과 어린이 등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밤을 보냈다. 우리는 물과 식료품, 담요와 매트리스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룰라 아민 유엔난민기구 중동지역 대변인은 시엔엔(CNN)에 “지난 3일 동안 수천명의 사람들이 건너온 것을 보았다. 레바논에서는 이스라엘의 폭격 범위가 확대되면서 안전한 지역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리아 난민 남성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가족들과 함께 레바논 남부 도시 나바티야를 빠져나왔다며 “우리는 베이루트로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집도,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10월7일로 전쟁 1주년을 맞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가자의 차디 나우팔(24)은 “현재 레바논 국민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가자지구 사람들뿐”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 통신이 전했다. 이날도 이스라엘군은 가자의 칸유니스를 공습해 3명 이상이 숨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레바논이 지옥이 되어가고 있다”며 “레바논이 또 다른 가자지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전면전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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