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선임에 결정적인 하자는 없다[김세훈의 스포츠IN]
기자는 올해만 정몽규 회장, 4선 포기하라는 기사를 세번 썼다. 그 생각은 최근 더욱 굳어졌다. 기자는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꾸준히 취재했다. 선입견, 편견을 빼고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보려 했다. 지금까지 기자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감독 선임은, 종목을 막론하고,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다양한 변수들도 속출한다. 후보군을 추천한 사람도 다수 ‘비즈니스맨’ 에이전트들이다. 한국행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은 후보도, 한국행을 지렛대 삼아 몸값을 올려 다른 곳으로 가려는 사람도 있다. 지원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힘든 현역 감독도 있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정해성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한 후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역할을 대신한 게 정당한가. 홍명보 감독은 다른 후보들과 달리 특혜를 받았느냐다.
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감독을 선임하는 기구가 아니다. 정관에 따라 조언, 자문, 건의, 추천하는 조직이다. 전강위는 10차 회의에서 후보 3명(홍명보, 바그너, 포엣)을 협회에 추천하기로 했다. 3명 우선순위 결정만 정해성 위원장에 위임했다. 그걸로 전강위 공식적 활동은 끝났다.
전강위가 추천한 3명을 최종적으로 만나 계약 조건 등을 논의해야 했다. 정해성 위원장, 변호사, 통역, 행정직원이 함께 후보자를 만나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정해성 위원장은 중도 사퇴했다. 정몽규 회장은 이임생 이사에게 정 위원장을 대신해 후보자와 면담 및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 이사에게 전강위원장 직위를 준 게 아니라, 기술이사로서 업무를 마무리하라는 것이다. 직위 겸직이 아니라 이사회 승인 사항도 아니었다.
만일 정해성 위원장이 사퇴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개인적인 위급한 상황 때문에 마지막 작업을 할 수 없게 됐다면? 감독 선임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게 옳을까. 전강위원 중 한 명, 또는 협회 임원이 남은 작업을 대신하는 게 맞을까.
이 이사는 정 회장으로부터 임무를 부여받은 후 전강위원들과 화상으로 토의했다. 당시 전강위원 몇몇은 사퇴했고 5명만 참석했다. 화상 회의에서 이 이사는 본인이 후속 조치를 담당한다고 알렸고, 위원들도 동의했다. 이 이사는 기존 후보군 3명 이외 다른 후보들이 추가되지 않은 전제로 업무를 맡았다. 정해성 위원장, 기존 전강위가 내린 결론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의미다. 이건 협회 내부 문서를 통해 밝혀진 것처럼 정식 회의가 아니었다. 이게 지난 24일 국회 질의에서 이슈가 된 ‘11차’ 전강위 회의록이다. 협회가 국회에 보낸 자료에 임시 화상 회의 제목을 ‘11차’로 적었다. 해당 문서를 작성한 직원 실수라고 해도 협회가 잘못한 것은 맞다. 협회는 지난 8월29일 ‘진짜’ 11차 전강위를 개최했다. 여자대표팀 감독 선임 등이 안건이었다. 정해성 사퇴 후 최영일 부회장이 주재했다. 당시 사전에 만들어진 회의 자료에는 ‘11차’로 적혀 있다. 이건 조작된 게 아니다.
신입사원 공채는 확실한 규정이 있다. 지원 자격 조건이 있고, 응시자는 기관 요구대로 시험과 면접, 연수 등을 거쳐야 한다. 지원자는 기관이 제시하는 조건을 따라야 입사할 수 있다. 지원하지도 않은 사람을 뽑았다면 그건 명백한 특혜, 반칙, 불법이다. 감독을 뽑는 건 종합예술에 가깝다. 점수로 줄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원자 중 선별해서 뽑을 수도 있고, 지원하지 않았지만 협회(클럽)가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제안해 영입하는 경우도 많다. 홍 감독은 당시 울산 감독이었다. 현직 감독에게 지원서를 요구할 수는 없다. 히딩크, 쿠엘류, 아드보카트, 허정무, 최강희, 신태용 등 역대 국가대표 감독들을 선임할 때 협회가 자기소개서, 프리젠테이션을 요구하지 않았다. 2018년 김판곤 위원장이 벤투 감독을 영입할 때도 그랬다. 김 위원장이 벤투 선임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우선순위에 있는 외국인 감독에게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다른 감독은 ‘멀리 찾아왔으니 만나는 주겠다’며 해서 겨우 봤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행 지원서를 낸 후보들이 아니었다. 만일 그 중 한명을 데려왔다면 특혜, 채용 비리였을까.
홍 감독을 최종 후보로 결정한 것은 이임생 이사다. 이 이사는 직접 만나본 바그너, 포엣이 성에 차지 않았다.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홍 감독이 그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했느냐는 비판할 수 있지만, 홍명보 선택 자체가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이사가 심야에 홍 감독 집을 찾아간 것은 적절한 처신은 아니었다. 이 이사는 홍 감독이 직전까지 강경 발언을 고려하면 자신을 만나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후보자 3명을 모두 면담해 협회에 최종 결과를 보고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이사는 홍 감독을 최종 결정한 뒤 전강위원들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언론에 미리 나올 것을 걱정했다고 하지만 앞선 비대면 임시회의에서 약속한 대로 최종 선정 결과를 전강위원들과 공유했다면 지금 같은 불상사는 없었다.
홍 감독이 평소 대표팀 감독에 관심 없다는 투로 말하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것, 그게 팬들 마음에 상처를 준 것 등은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도덕적, 정서적 문제지 불법은 아니지 않나. 감독 선임과정은 분명히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도 결정을 뒤바꿀 만한 결점은 없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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