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영풍-고려아연과 LG-GS의 차이
[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사람 사는 세상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특별히 주목받을 일이 아니다. 누구나 수도 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탓이다. 만남과 헤어짐은 그런데도 많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다. 사람 사이 일의 대부분은 만남과 헤어짐을 동반하고 그 과정에서 추함과 아름다움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영풍그룹은, 지금은 고인이 된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만든 기업이다. 두 창업주는 큰 뜻을 갖고 만났으며 그 만남은 75년간 빛났었다. 두 창업주가 별세한 뒤에도 영풍그룹은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협력으로 가동됐다.
영풍그룹은 그러나 지난 2~3년새 갈등을 빚어오다 끝내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악스러운 싸움판 위에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자세로 맞붙었다.
시발점은 최씨 일가의 대표격인 창업주 3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회장으로 취임한 뒤부터다. 최 회장과 장씨 집안 대표 격인 장형진 영풍 고문 사이에서는 너무 큰 나이 차이가 악연의 단초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 고문이 1946년생이고 최 회장이 1975년 생이니 나이 차이가 30년에 육박한다. 장 고문은 창업 2세고 최 회장은 3세여서 그런 격차가 생겼다. 강산이 세 번 변할 세월의 격차만큼 두 사람의 무의식 세계는 크게 달랐을 것이다.
이 무의식의 차이가, 양측이 갈라서기로 결단한 배경으로 밝힌 이유보다 어쩌면 더 깊은 곳에서 작동됐을 수 있다. 최 회장 측은 영풍이 산업 쓰레기를 고려아연 측에 떠넘긴 게 결정적 이유라고 했다. 장 고문 측은 고려아연이 1대주주인 영풍을 무시하고 투자 및 유상증자 등에서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게 원인이라 맞섰다. 둘 다 맞거나 틀리거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맞다 해서 완전한 진실은 아닐 수 있고 틀리다 해서 팩트가 완전히 잘 못된 것은 아닐 테다. 나름 다 근거가 있겠다.
문제는 그런 파편적 사실의 진위 여부가 아니다. 그런 갈등이 있다 해서 윗 어른들이 쌓은 75년 공을 시장에 나도는 쓰레기보다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해버리고 마는 인간의 행동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가 진짜 문제일 수 있다.
돈 때문일까. 권력욕일까. 자존심일까. 오기일까. 그것들을 모두 합친 범주 어디쯤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절망스럽게 하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지는 않는 데에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
이 사태는 지난 2004년 LG와 GS의 '아름다운 이별'을 소환한다. LG그룹은 1946년 구인회·허만정 창업주가 함께 만들었다. 영풍그룹처럼 두 집안의 공동 운영체제였다. 영풍과 마찬가지로 LG도 긴 세월이 흘러 3대가 경영 전면에 나설 시점이 됐다. 그러자 영풍그룹처럼 지분이 잘게 쪼개지는 상황이었다. 양가에서 지분을 가진 사람만 100명이 넘었고 지분관계가 복잡했으며 언제 폭탄이 터질 지 모를 상황이었다. LG그룹은 그러나 이 복잡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 덕에 LG그룹은 ㈜LG를 정점으로 한 LG그룹과 ㈜GS홀딩스로 정점으로 한 GS그룹으로 재편됐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기업과 경영을 전공한 전문가들은 책 한 권 분량으로 그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분석 가운데 어쩌면 '인본을 중심으로 한 사람 사이의 신뢰'도 한 장(章)을 차지할 것이다. LG와 GS는 이를 잃지 않았고, 영풍과 고려아연은 30년 격차가 격랑이 돼 이게 매몰됐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빼지 않은 칼이야 말로 서슬이 시퍼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라는 말도 있다. 싸워서 이겨봐야 상처 뿐인 영광인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싸움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 싸움의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명분은 사라지고 관성을 따라 주고 받는 주먹만 더 커지는, 한 마디로 '개싸움'이 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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