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추석의 추억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버스터미널, 기차역, 도로 위에는 들뜬 얼굴로 고향을 향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려진다. 필자도 명절이 되면 서울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느라 급하게 이동하는 귀경객 중 하나였다.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고 다섯 식구가 한차를 타고 재미있는 가족여행쯤으로 생각하고 출발했지만 대여섯 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고향에 도착할 때가 되면 모두가 지쳐서 아무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곤 했다.
오랜 시간 운전을 하고 부모님 댁에 도착하면 몸은 파김치가 된 듯 피곤하지만, 부모님의 얼굴을 뵈면 다시 기운을 얻었다. 매년 아들 가족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던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는 항상 '바쁘고 힘든데 왜 고생하며 올라왔느냐'고 걱정스러운 말만 반복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기다리던 아들 내외와 손주를 만나게 되어 기쁜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오신 부모님께 명절은 가족 전체가 모이는 특별한 날이였다. 아들 가족이 오기 전 어머니께서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하신 녹두전, 큼지막한 만두 등이 차려진 푸짐한 밥상이 매년 추석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요리를 게눈감추듯 짧은 시간에 먹고 일어설 때면 어린 시절 철없는 아들로 돌아간 듯했다.
고생하는 어머니와 아내를 생각해 설거지라도 도우려고 고무장갑을 끼면 아들을 밀어내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들 손에 물이 묻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가 엿보였다.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문을 나서는 우리를 배웅하면서 당신의 시야에서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찾아 뵙고 인사드려야겠다.'라고 매번 결심하지만 실천으로 옮겨지진 못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것은 해외 출장을 떠나기 전, 병원에 입원중이시던 어머니의 얼굴을 뵙고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드렸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큰 소리로 '거럼, 잘 다녀오게.'라고 황해도 사투리로 대답해 주실 때의 표정에서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표정이 느껴졌다. 병원에서의 만남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일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고,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고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고사성어처럼 시간은 절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매년 명절마다 부모님을 뵈러 올라가고 내려오기를 반복하면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것이 송구하다. 북한에서 피난을 내려오시면서 겪으셨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외울 지경이 되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들어드리지 못한 것,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드리지 못한 것 등 잘해드린 기억보다 못해 드린 기억들만 생각나면서 내 마음에선 '어머니 죄송합니다. 감사해요, 어머니'라고 뒤늦게나마 마음속으로 되뇌이곤 한다.
이제는 내가 그 시절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 추석을 맞아 집에 방문하는 자녀와 손주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내가 준비한 추석 밥상을 맞으며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서 떠들며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귀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전에 어머니에게 드리지 못했던 감사의 말을 자녀들에게라도 해야겠다.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잘 살아주니 고맙구나' 하는 진심 어린 말을 지금, 바로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시간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기에 추석 명절이 지난 지금이라도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를 한 번 더 걸어 '고맙다' 또는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해보자. 지금의 전화 한 통이 먼 훗날 뼈아픈 후회가 되지 않을 테고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가족들을 떠올린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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