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품의 변신은 무죄”…피하주사·필름·패치로 시장서 인기
투약 시간 줄이고, 약 못 먹는 환자도 해결
의약품을 환자가 쓰기에 좀 더 나은 형태로 개발하면 신약 못지않은 시장 파워가 생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특허기간이 끝난 신약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다른 제형으로 개량해 국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차바이오그룹 산하 상장사 CMG제약이 세계 첫 필름형 제형인 정신질환 치료제 ‘데핍조’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데핍조는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조현병 치료제(성분명 아리피플라졸)를 입 안에서 녹는 필름 제형으로 개발한 것이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하면 약을 거부하거나 뱉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필름 제형은 물 없이 복용할 수 있고 입 안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주성분인 아리피프라졸은 2022년 용도 특허가 만료됐다. 적응증도 조현병뿐 아니라 양극성 장애, 주요 우울장애, 자폐 장애, 뚜렛 장애 등으로 추가되며 확대됐다.
CMG제약은 데핍조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개량신약으로 품목허가 승인을 받겠다는 계획이다. 개량 신약은 특허가 지난 신약을 단순히 복제하지 않고 약효나 복용법을 개선한 것이다. 단순 복제약과 달리 별도로 특허로 보호받는다. CMG제약은 “미국 현지 개량신약 허가 전문 자문사와 협력해 품목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라며 “미국 진출을 철저히 준비해 품목 허가를 받는 대로 미국 시장에 진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 분석기관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미국 조현병 치료제 시장 규모는 연간 약 12조원이다. 추가된 적응증 치료제 시장까지 합하면 약 22조원 이상 규모로 평가된다. 필름형 개량신약은 약효가 오리지널 약과 같으면서도 복용이 편리하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환자가 잘 먹지 못하는 약을 피부에 붙이는 패치제로 개발하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먹는 약은 간이나 소화기 계통을 통해 흡수돼 메스꺼움, 설사 같은 부작용과 위장 문제도 동반할 수 있다. 알약을 삼키기 어려워하는 환자도 있다. 이를 패치로 개발하면 약물을 혈류로 직접 보내 위장관 노출을 피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아이큐어도 알츠하이머병 환자용 패치제 ‘도네시브패취’를 개발해 투여 편의성과 순응도를 개선해 개량신약으로 인정받았다. 도네페질은 인지장애 치료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약물이다. 회사는 먹는 약인 도네피질을 패치 형태로 개발했다. 국내 판권을 사들인 셀트리온제약이 ‘도네리온패취’라는 이름으로 국내 허가를 받고 판매 중이다.
올해 코스닥에 상장한 티디에스팜은 지난달 기업공개(IPO) 기자 간담회에서 통증과 치매, 요실금 치료용 패치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자체 경피약물전달시스템(TDDS)으로 기존 먹는 약과 주사제의 부작용을 줄이고 흡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약물에 대한 환자의 순응도를 높이고 효능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제형을 바꾸거나 성분을 더한 개량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약의 특허가 만료되면 시장엔 복제약들이 쏟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진다. 개량신약이 일반적인 복제약보다는 개발 비용이 더 들고 허가 관문이 까다롭지만, 미국에서 개량신약으로 허가를 받으면 제네릭보다 약값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또 복제약은 성분명으로만 마케팅과 처방이 가능하지만, 개량신약은 제품명으로 마케팅과 처방할 수 있어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셀트리온이다. 회사는 환자가 더 편리하게 주사를 맞을 수 있도록 바꿔 미국에서 신약으로 허가받았다. 지난 3월 미국에 본격 출시한 ‘짐펜트라’는 기존에 정맥주사(IV)로 투여하는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을 피하주사(SC) 제형으로 바꾼 것이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를 혈관으로 주입하는 정맥주사용은 병원에 가서 30분에서 1시간 동안 투여받아야 한다. 반면 짐펜트라의 투여 시간은 10초 내외로, 환자가 집에서도 투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한미약품이 가장 먼저 개량신약으로 성공을 거뒀다. 회사는 지난 2009년 6월 국내 첫 개량신약인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을 출시했다. 이전까지 따로 복용해야 했던 두 가지 성분을 결합해 만든 복합 신약으로, 발매 5년 차에는 제형 크기를 기존보다 더 줄였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아모잘탄 누적 처방 매출은 1조494억원으로,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전문의약품 중 처음으로 누적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유한양행은 GC녹십자, 대웅제약, 대원제약과 함께 의약품의 약효 성분이 빠르게 방출되는 속방정 방식을 서서히 방출되는 서방정으로 개량한 위염 치료제를 개발했다. 지난 2020년 12월 ‘레코미드서방정(유한양행)’, ‘무코텍트서방정(GC녹십자)’, ‘뮤코트라서방정(대웅제약)’, ‘비드레바서방정(대원제약)’ 등의 제품명으로 각각 품목 허가를 획득한 약으로, 기존 약은 하루에 3정씩 복용해야 하는데 이를 2정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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