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픔은 구경거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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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에 대해 '생각하는 일'과 '아는 일'은 다른가.
아픔에 대해 생각'만' 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일만으로 힘겨운 상황을 두고 그 아픔과 공감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착각할지 모른다.
아픔을 가까이에 두고 '아는 일'로 삼고자 애쓰는 길도 있기 때문이다.
아픔에 대해 마냥 생각만 하지도, 그렇다고 그 아픔에 마냥 붙들려 있지도 않은 채 뿌리칠 수 없는 그것에 대해 끈질기게 '알고자 하는' 일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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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만 같던 마음
이영광 지음 l 창비(2024)
아픔에 대해 ‘생각하는 일’과 ‘아는 일’은 다른가. 다르다. 어떤 아픔을 ‘생각’하는 데서 그친다면 아픔이 유발하는 절절한 생의 감각으로부터 한발 물러날 수 있다. 이때 아픔은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아픔에 대해 생각‘만’ 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일만으로 힘겨운 상황을 두고 그 아픔과 공감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착각할지 모른다. 정치권으로부터 부쩍 자주 들려오는 ‘국민들 고통에 공감한다’는 표현이 텅 빈 (정확히 말하자면 저들의 무책임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핑계로 삼으려는) 수사로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헛것을 진짜라 여기기로 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이렇게나 간편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그런가. 그렇지 않다. 어물쩍 넘길 수 없다. 아픔을 가까이에 두고 ‘아는 일’로 삼고자 애쓰는 길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감정과 통증, 살아 있어서 몰래 숨어든 슬픔과 기쁨, 비명과 그림자, 이 모든 것을 몸에 새긴 채 버려둘 수 없는 삶의 한 자락으로 헤아리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영광 시인의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에 수록된 여러 시편으로부터, 우리는 시인이 희망 없는 아픔의 저 밑에서 희미하게 뛰고 있는 맥박을 짚으려고 지금 세상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픔에 대해 마냥 생각만 하지도, 그렇다고 그 아픔에 마냥 붙들려 있지도 않은 채 뿌리칠 수 없는 그것에 대해 끈질기게 ‘알고자 하는’ 일에 대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쓴다.
“골목길 어둠 속에서 별안간 고양이가 나타나/ 더 어두운 구석으로 절룩절룩 도망친다/ 아픈 줄 몰랐는데/ 못 걷는 다리 하나를 들고 달아난다/ 다친 강아지들이 수술받는 것도 티브이에서 보았는데/ 아프리라 생각하며/ 아픈 줄 몰랐는데/ 예전엔 마을에서, 목에 칼이 들어간 돼지들의/ 드높은 비명도 들었는데/ 아프다고 생각하며/ 아픈 줄 몰랐는데/ 청년이 일하다가 죽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모두가 무죄란 말이냐며 우는 어머니를 뉴스에서/ 보았는데/ 강아지는 다행히 수술을 받는구나/ 돼지들은 비명을 그쳤구나/ 사람이 죽고 재판을 하고, 채널이 바뀌었구나, 하면서/ 안 아픈 줄 알았는데/ 고양이는 놀라 바동거리며 꼴찌처럼/ 잘 달아나지도 못하는데/ 아프다고 생각하며/ 안 아픈 줄 알았는데/ 강아지는 죽었는데/ 돼지는 국밥이 되었는데/ 눈물은 어머니 뺨에/ 흘러내렸는데“(‘아프다고 생각하며’ 전문)
아픔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아픔이라는 말 자체에 매달릴 게 아니라 아픔을 겪는 이들의 표정과 몸짓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안 아픈 줄 알았던 착각의 순간을 ‘안 아픈 줄 알았는데’라는 묘한 종결어미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강아지”가 “죽”고, “돼지는 국밥이 되”고, “눈물”이 “어머니 뺨에” “흘러내”리는 순간이 멈추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픔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의 비명과 절규가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내내 울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진짜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사람, 진실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너무 많은 가짜에 둘러싸여 있느라 진짜를 알아보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시인은 ‘여러분, 우리가 지금 뭘 알고 있는 겁니까’ 하고 묻는다. 빛처럼 다가오는 모름을 광명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신이 보고 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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