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문뜨문 고물 버스, 시골살이 9년…눈치 없대도 ‘소리’를 낸다
버스공영제·빈집은행 등 지역 권력에 끊임없이 질문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망해가는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지어내기 위하여
양미 지음 l 동녘 l 1만7000원
귀향 혹은 시골 정착에 실패한 지인 한두명씩은 있다. A는 제주도에서 식당을 하다가 귀환했고(자영업자), B는 지역의 중심가에 집을 잡고 야무지게 내려갔지만 1년 만에 돌아왔으며, C는 내려가자마자 자신을 내려오라 부른 사람들과 불화를 겪는 중이다. 그러니 네명 가족 D는 내려간다고 집까지 구해놓고는 5년째 못 내려가고 있다. 실패담을 듣고 ‘낭만 시골’은 깨진다. 대한민국에 남은 ‘시골의 낭만’이란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나, 그것의 ‘언니네’ 버전인 ‘산지직송’ 정도가 다다.
여기, 처참하게 실패를 맛보고 있지만 9년째 ‘분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홈쇼핑 전화상담원으로 직장을 경험하고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시민신문 기자 등으로 살던 양미(빨간거북)의 지역행은 갑작스러웠다. “위계를 만들어 착취하는 구조에서 탈출하는 것, 즉 그들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도시화와 상업화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이자 착취의 토대다. (…) 그러니 우리는 시골로 가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몽땅 시골로 간다면 더 이상 이 구조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의 강연을 듣다가 불현듯 결심했다.
이 말 역시 염정아(‘산지직송’에 출연하는 배우)의 손짓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은 곧장 드러났다. 하지만 그는 떠나는 대신에 마구 질문을 해대며 시골을 휩쓸고 다닌다. 지역지의 기자라는 신분이 질문의 기회를 주었다. 토론회도 가고, 정보공개 청구도 하고, 경험담을 들려줄 지역민을 어렵게 찾아 인터뷰했다. 그렇게 하여 책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가 완성되었다. 읽다 보면 ‘당장 떠나야 할 것 같은데’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를 붙드는 건 ‘누림’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흔한 말로 ‘희망’이다. “오늘날 지역소멸을 이야기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도 진작에 소멸”(이라영 추천사)해버린 한국에서, 그대로 소멸해버릴 수는 없기에 그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양미가 시골에서 한숨을 쉬는 목록들을 먼저 열람해본다. 한숨 1호는 이동권이다. 버스다. 옆 마을 수업에 가기 위해서 면 소재지의 버스공용터미널로 가서 환승해서 버스를 탄다. 그러면 두 시간 전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가 하루에 네번밖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옆 동네로 가는 데 하루가 걸리기도 했다. ‘다 아는 사람들끼리’고 바빠서 버스는 안내 방송을 하지 않는다. 이 버스를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대로 운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에 가면 예상치 못한 자금이 들게 된다. 바로 차 구입비다. 하지만 양미는 차를 사지 않았다. 이동권을 가로막는 것은 보행로 자체가 없는 길, 넓게 만들어놓고는 화분을 떡하니 올려놓은 보행로 등도 포함된다.
한숨 2호. 시골에는 빈집이 넘쳐나지만, 찾는 사람이 있어도 제대로 수요 공급이 맞지 않는다. 빈집재생사업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주인을 위한 것이다. 지원금을 받아서 고치는 것은 임차인이지만, 임대인은 그마저도 무상 임대 기간이 길어서 망설인다. 양미는 군의 주거지원 정책을 살펴보았지만 하나도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
지원정책이 많아 보이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는 가지 않는다. 그것이 한숨 3호다. 군의 청년정책은 주거·일자리·농업·기반 등으로 나뉘어 세분화되어 있지만 청년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말한다. 지원 요건이 너무 까다롭거나, 엄청나게 많은 서류가 필요하거나, 일자리가 없는데 중소기업 일자리 지원사업이 있는 식이다. 고령화, 병원, 농협, 돌봄, 빈부격차 등 4호, 5호 들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 작업 라인처럼 끊이지 않는다.
이런 한숨 나오는 현장은 발로 뛰면서 들은 목소리가 고발하고 있다. “차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요. 일주일에 한두번씩 30~40명이 탈 때가 있어요, 한번에 작은 차에. 아이고야, 내가 운전을 하면 승객 얼굴이 (얼굴 가까이) 와 있어요. 그렇게 고물 차에 태우고 이 길을 내려가요. 와, 핸들 꽉 잡고 진짜 손에 힘이 꽉 들어가요.” 버스 운전자의 말이다. 긴 운행거리를 빠듯하게 계산된 시간에 맞춰 달려야 하기 때문에 안내 방송도 못 하고, 늦게 움직이는 노인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 아이스박스가 사람마냥 버스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데, 끼니를 거르게 되는 운전사들이 급하게 먹으려고 도시락을 놓아둔 것이다. 버스의 문제는 기사의 불친절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처음에는 ‘임신 몇주다’ 그러더니 다음에 갔을 때는 (…) 또 달라지 거예요. (…) 여기서는 출산을 할 수가 없고 진료만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진안읍에 살면서 두 딸을 둔 부부의 말이다. 진안군은 ‘합계출산율 1.56으로 전국 3위, 전북 2위 달성’이라고 자랑하며 출산정책에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자랑하는 진안군에서는 정작 출산이 불가능한 것이다. 양미는 숫자의 실효성도 의심한다. 출산정책 상관없이 가임 여성의 수가 적으면 합계출산율은 높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양미를 절망시키는 것은 사라진 공동체다. “오히려 시골에서 환경과 기후위기, 젠더, 인권, 동물권 등을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주제들은 언제나 ‘그런 것’이란 표현(또 ‘그런 얘기예요?’)으로 나에게 되돌아왔고, 늘 눈치 보며 해야 하는 말이었다.” 그는 ‘커먼스’를 끊임없이 일깨우고, 권력에 들이민다. 버스 회사에 버스공용화를 제안하고, 군 담당 공무원에게 빈집은행제도를 제안한다. ‘주민 동태 파악’이 임무로 명기된 이장 중심으로 돌아가는 ‘민주주의’도 할 말이 많다.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을 명토 박은 정당법에 대해 낸 헌법소원에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도 그의 대거리 상대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주머니 속의 송곳이 되지 않아야 한다”, “어른스럽게, 자연스럽게 굴어라”, “눈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곧 시골로 간다. (…) 나와 친구들은 지자체의 도움으로 살고 싶은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의 빈집 몇 채를 얻어 우리가 원하는 구조로 개량할 수 있었다. (…) 공동거주지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핀란드는 기대보다 더 안전한 느낌의 나라이고, (…) 기본권을 지키는 데 급급한 상황이 아닌 그 이상을 상상하기 좋은 나라 같아요’라는 핀란드 탐페레에서 온 엽서를 보고 저자가 하는 상상이다. 그 이상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 양미가 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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