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방 빼는 날 2

한겨레 2024. 9.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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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나의 방은 고래 뱃속이야 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하니 더 좁은 창자 골목 속으로 사라져야 하니 요나.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월부 동화책을 옆구리에 끼고 눈을 감고 초인종을 눌러 이런 운수좋은 날은 내 뱃속에서 고래가 울어 요나.

영원한 방도 없는데 왜 캄캄한 고래 뱃속에서 아파트는 늘어나지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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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나의 방은 고래 뱃속이야 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하니 더 좁은 창자 골목 속으로 사라져야 하니 요나.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면 여기서도 독립이 필요하겠지 독립만세 부르다가 감옥에 갇힌 외할아버지 피가 내 몸속에는 흐르지 않나봐 요나. 일찍부터 배달의 민족. 자손으로 취직한 내 친구는. 캥거루족. 내 손에다 날마다 지푸라기 쥐여주면서 주문을 걸어 열려라 방? 열려라 문! 그 어떤 날은 믿기 슬프겠지만 친구 따라 강남까지 가지 아 강남에는 뽕밭은 사라지고 층층이 야곱의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하늘이 열리지 뚜껑 열린 하늘에는 천사물고기가 살고 요나.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월부 동화책을 옆구리에 끼고 눈을 감고 초인종을 눌러 이런 운수좋은 날은 내 뱃속에서 고래가 울어 요나. 부유하는 플랑크톤이 출렁이는 밤하늘에는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는 불쌍한 불빛들도 살아 하늘 위에 하늘이 없다고 땅 위에 땅이 없다고 바다가 열리는 옥탑 방에서 소금과 소주를 마시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왜 바다에는 십자가를 꽂을 땅이 없지 요나. 영원한 방도 없는데 왜 캄캄한 고래 뱃속에서 아파트는 늘어나지 요나. 믿고 싶지 않지만 자네처럼 보증금도 없이 월 10만원 건물 主는 없지 요나. 고마웠어 그동안
-지난해 9월5일 작고한 시인 송유미(향년 69)의 유작 시집 ‘점자 편지’(2023, 실천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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