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책인가 굿즈인가…무려 5만원짜리 ‘MZ 잇템’ [책&생각]

한겨레 2024. 9.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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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또 무슨 책인가!"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켜보다 보면, 제목만으로는 도통 분야나 내용을 알 수 없는 책들이 상당수다.

9월 마지막 주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희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책들이 순위권에 여럿 올라와 있다.

표지와 출판사 이름을 보면 '코믹' 분야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관에 동조하는 진정한 팬이라면 5만원 정도의 책값은 과감하게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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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언 스테이지 아트북 (특별판)
다산코믹스(2024)

“이것은 또 무슨 책인가!” 요즘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켜보다 보면, 제목만으로는 도통 분야나 내용을 알 수 없는 책들이 상당수다.

9월 마지막 주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기성세대의 관점으로 희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책들이 순위권에 여럿 올라와 있다.

3위에 랭크되어 있는 ‘사카모토 데이즈 17 (특별판)’(대원씨아이)은 정가가 무려 4만3000원인데, 책을 사면 일러스트 포스트 카드와 조직 스카우트 명함, 특제 슬리브 케이스, 그리고 아크릴 스탠드 등의 굿즈가 딸려온다.

5위를 차지한 ‘에일리언 스테이지 아트북 (특별판)’ 역시 정가가 5만4000원으로 만만치 않지만, 아트북과 드로잉북이 포함된 가격이다. 초판 구매자들에게 6종의 미니 포스터 세트를 추가로 증정한다고 소개돼 있다.

11위에는 ‘최애의 아이 14 (소설합본판)’(대원씨아이)이, 22위에는 ‘은하수 잡화점 (잠뜰TV 본격 오리지널 스토리북)’(서울문화사)이 각각 자리를 지키고 있다.

표지와 출판사 이름을 보면 ‘코믹’ 분야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슬램덩크’ 등, 일본 만화 열풍 이후 코믹이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여러 권 등장하는 게 더는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출판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코믹 열풍은 전시나 체험과 맞물리면서 더욱 무서운 기세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는 특정 콘텐츠의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전시공간 팝업스토어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가 자주 올라온다.

에일리언 스테이지 팝업 스토어 예약 사이트의 이미지. 네이버 예약 화면 갈무리

지난 6월 엠제트(MZ)세대의 놀이터로 여겨지는 여의도의 한 백화점에 마련된 ‘은하수 잡화점’ 팝업스토어에는 구름 인파가 몰렸다. 사전예약자만 5만명이 몰렸고, 준비된 아이템들은 모두 완판됐다.

서울 홍대 인근에서 21일부터 10월9일까지 진행되는 ‘에일리언 스테이지’ 팝업스토어에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작품 세계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일종의 체험관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에일리언 스테이지’는 2038년 고등생물인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해 식민지화하고 인간을 애완용으로 취급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 기반의 에스에프(SF) 애니메이션이다. ‘오징어 게임’의 데스매치와 ‘프로듀스 101’의 서바이벌 오디션 설정을 결합해 긴장감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글로벌 누적 조회수 6천만뷰를 돌파했다.

최근 한창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에일리언 스테이지 아트북’은 ‘에일리언 스테이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담긴 일종의 ‘메이킹북’이다. 이제는 인기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뿐 아니라, 유튜브 영상 콘텐츠를 위한 메이킹북도 만들어진다.

‘에일리언 스테이지 아트북’은 이미 영상을 시청하며 흥미진진한 세계관과 매력적인 캐릭터에 매료된 팬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책이 읽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팬덤을 강화하고 드러내는 굿즈로 전락한 상황에서, ‘에일리언 스테이지 아트북’은 젊은 세대에게는 소장욕을 자극하는 ‘잇템(꼭 있어야 하거나,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이자 ‘핫템’으로 여겨진다.

세계관에 동조하는 진정한 팬이라면 5만원 정도의 책값은 과감하게 지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코믹 관련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한 상황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책의 미래를 고민해본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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