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여인 라우라를 향한 사랑과 찬미의 노래 [책&생각]

최재봉 기자 2024. 9. 2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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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이자 시인이다.

그러나 라우라는 시인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많은 시들에서 그는 응답 없는 사랑의 달콤한 고통을 줄기차게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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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칸초니에레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운찬 옮김 l 아카넷 l 4만원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이자 시인이다. 특히 시인으로서 그의 명성을 높인 것은 피렌체 속어로 쓴 서정시집 ‘칸초니에레’였다. 소네트를 중심으로 칸초네, 세스티나, 발라드, 마드리갈 등 여러 형식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 쓴 366편의 서정시를 모은 이 시집이 처음으로 완역되었다.

서양 문학사에서 ‘페트라르카 소네트’로 알려진 14행 소네트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 큰 영향을 주었고, 프란츠 리스트는 페트라르카의 47번, 104번, 123번 소네트를 피아노곡으로 만들기도 했다. 시들은 대부분 페트라르카가 1327년 프랑스 아비뇽 성당에서 처음 마주친 여인 라우라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라우라의 정체에 대해서는 위그 드 사드의 아내였던 로르 드 노베일 것이라는 추측이 일반적이지만, 중세 유럽 시인들 사이에 유행한 주제인 ‘궁정 연애’(courtly love)를 다루기 위한 가공의 문학적 장치로 보기도 한다.

“나를 묶어놓은 그 아름다운 두 눈,/ 만나게 된 장소와 아름다운 고장,/ 계절과 날씨와 시간과 순간,/ 날과 달, 해는 축복받으소서.”

이렇게 시작하는 소네트 61번은 사랑하는 여인 라우라와 그 여인과 관련된 모든 것에 축복을 염원하는 내용이다. “내 여인이 생각에 잠겨 밟고 걸었던/ 행운 있는 풀들, 행복하고 즐거운 꽃들이여,/ 아름다운 발자국을 간직하고/ 그녀의 달콤한 말을 듣는 강변이여”(소네트 162번)에서도 시인은 라우라의 흔적을 간직한 풀과 꽃, 강변을 한껏 부러워한다. 그러나 라우라는 시인의 사랑에 응답하지 않고, 많은 시들에서 그는 응답 없는 사랑의 달콤한 고통을 줄기차게 노래한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제 나는 어디로 피할지 모르겠으니,/ 그 아름다운 눈은 너무 오래 나를 괴롭혀,/ 불쌍하구나, 휴식 없는 가슴을/ 지나친 괴로움이 파괴할까 두렵다오.”(소네트 107번 앞부분)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의 고통과 함께 시인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시적 재능에 대한 회의이다. 시인은 라우라에 대한 사랑을 시로써 표현하고자 하는데, 무딘 펜은 그런 시인의 의도를 자주 배반하고는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라우라의 아름다움과 덕성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듯이, 그녀에 대한 칭찬을/ 시에 담으려고 뛰어난 손을/ 글쓰기에 내미는 사람은 실패할 것이니,/ 모든 가치의 중심이자 내 가슴의 달콤한 열쇠인/ 그녀의 눈을 보는 사람이 목격하는/ 모든 덕성과 모든 아름다움을/ 어떤 기억의 방이 담을까요?”(칸초네 29번 부분)

이렇게 “살아 있는 죽음”과 “즐거운 고통”(소네트 132번)에 시달리던 시인은 처음 만난 지 21년 뒤 라우라가 숨지자 충격과 실의에 빠진 채 삶의 덧없음을 노래하기도 한다(소네트 272번). 그러나 중세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이내 상실과 방황에서 구원과 영생으로 방향을 튼다. 단테의 베아트리체처럼 라우라는 그에게 구원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육신의 축복을 대신해 영혼의 축복이 이제 그를 이끈다.

“나는 구원을 얻기 위해 괴로움을 겪었고,/ 영원한 평화를 위해 짧은 고통을 겪었다오./ (…) / 나의 길을 좋은 항구로 이끌었고,/ 내가 죽지 않도록 불경하고 불타는 욕망을/ 부드럽게 억제한 그녀는 축복받으소서.”(소네트 290번)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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