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기업과 대화하자"… '강경투쟁 외골수' 민주노총, 변화 요구 분출
조합원 찾아가 여론 듣는 현장토론회 진행
조합원들 "강경투쟁 위주 전략 한계 느껴"
대화 참여·정치 주도 등 적극적 변화 요구
시민들이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선은 맨날 싸우고 반대만 하는 단체잖아요. 투쟁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거든요. 정부, 기업, 정치권과 모든 대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민주노총 30주년 정책대회 현장토론 발언
강경 투쟁과 파업의 상징인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직의 획기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민주노총이 오는 11월 노동운동 전략 방안을 논의할 정책 대토론회에 앞서 조합원 여론 수렴을 위해 릴레이로 진행하고 있는 현장 토론회에서다. 1995년 창립 이후 30년 동안 노동·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했음에도 민주노총의 노선과 전략은 수십 년 전에 머물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구성원 사이에 팽배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부, 지회, 분회 등 하부 조직에서 활동하는 '풀뿌리 조합원'을 상대로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묻는 공개 논의의 장을 마련한 건 처음이다. 한국일보가 취재한 현장 토론회에서 조합원들은 사회적 대화 재개부터 현실정치 참여, 집회문화 변화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를 요구했다.110만 조합원이 소속된 민주노총이 이 같은 내부 요구를 적극 수용해 행동 변화에 나설 경우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
"사회적 대화, 적극 참여하자"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현장토론에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자"는 의견이 쏟아졌다. 사회적 대화 없이는 실익을 얻기 힘들고, 대화 거부로 사회적 갈등 책임의 화살이 민주노총에 집중된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민주노총 내부에선 1999년 사회적 대화에서 이탈한 이후 기업은 물론 정부, 정치권과 대화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기류가 강하다. 대화에 참여하면 정부와 기업의 거수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노사정 대화 기구인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도 한국노총만 노동자 대표로 참여하면서 민주노총은 의제와 회의 결과조차 제때 공유받지 못하는 상태다.
우정기 법원본부 정책국장은 "경사노위에도 민주노총이 못 들어갈 이유는 없다"며 "치열하게 논의하다 깨지고 나올지라도 상대의 요구를 확인해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해서 100가지 요구 사항 중 30개 또는 50개라도 관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창호 법원본부 기획국장은 "야당이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갖고 있는 국회에서 새로운 대화의 틀을 만들면 의제와 논의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대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면 정치 지형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주도 진보정당 세우자"
같은 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에서 열린 현장토론에선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단일 진보정당을 세우자"는 요구가 주를 이뤘다. 민주노총은 2012년 통합진보당 지지철회 이후 현실정치 관여에 대한 뚜렷한 지침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장미영 홈플러스지부 조직국장은 "추운 겨울, 뜨거운 여름 길 위에서 아무리 시위를 해도 국회의원 말 한마디에 법이 바뀌는 절망적 순간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신승훈 이마트지부 위원장은 "진보정당에 노조 목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아 110만 민주노총 조합원 중 30~40%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며 "민주노총 중심의 진보정당을 만들어 하나로 뜻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내부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내부에서 아무리 부인해도 결국 일반 시민이 바라보는 민주노총은 과격한 투쟁 단체에 갇혀있다는 위기감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11월 27일부터 3일간 조합원 2,000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정책 대토론회를 예정한 가운데, 양경수 위원장은 이번 현장 토론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수용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행동 변화로 나아가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 조직 내에 대화와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여전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대화 채널이 닫힌 것보다는 열린 것이 훨씬 좋다"면서도 "지금까지 노사정 대화는 늘 노동계의 양보를 받아내는 쪽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중심에 노동을 두는 변화까지 이끌어야 대화가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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