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잊지 마세요”… 뉴욕 울린 北 억류자 가족의 외침
美 뉴욕서 북한 인권 간담회 개최
“왜 북한은 우리 국군 포로 가족을 이렇게 산산조각 내야 하는 겁니까? 북한에 호소합니다. 이제 우리 가족들을 그만 갈라놓아 주세요.”
25일 미국 뉴욕 비영리 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북한 인권 간담회에서 탈북자 손명화씨가 이같이 말하자 100여 명의 참석자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보였다. 손씨는 국군 포로로 북한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유해를 유언에 따라 한국에 모셔왔다가 북한에 남은 오빠와 동생, 조카 등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져 고초를 겪고 있다며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이날 뉴욕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을 초청해 ‘나를 잊지 마세요(Forget Me Not)’란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줄리 터너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사회를 봤고 손명화씨, 지난해 10월 동생이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김규리(1998년 탈북)씨, 1978년 일본의 한 해변에서 납북된 마스모토 루미코의 동생 마스모토 데루아키씨,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김정삼씨는 행사 전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동생이 북한에 억류된 지 벌써 4000일이 지났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5년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는 동안 북한에 억류된 동생은 한국에 송환되기는커녕 생사 확인도 되지 않았고, 우리는 잊히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김씨의 동생 김정욱 선교사는 중국 단둥을 기반으로 탈북민을 위한 구호 및 선교 활동을 펼치다 2013년 10월 8일 북한에 체포됐다. 김정삼씨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할 때 문재인 정부에 ‘제발 북한에 잡혀 있는 내 동생 얘기를 꺼내달라’고 부탁했었다”면서 “그들(문 정부)은 ‘대화가 잘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그 후로도 아무도 동생 일에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에는 김정욱 선교사뿐 아니라 김국기·최춘길 선교사 등도 억류돼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올해 10월과 12월에 억류 10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강제 북송된 탈북민 가족들도 애가 타는 것은 마찬가지다. 김규리씨의 동생 김철옥씨는 지린성·랴오닝성 감옥에 수감돼 있던 지난해 10월 9일 중국이 북송한 탈북민 600여 명 중 하나다. 김규리씨는 “최근엔 탈북 브로커마저 북한 관련 정보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동생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했다.
비록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이들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국제사회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9일 대변인 명의 보도자료를 내고 “김정욱 선교사는 다른 5명의 한국인과 함께 북한에 구금돼 있다”면서 “우리는 공정한 공개 재판을 거부당한 채 부당하거나 자의적인 구금을 당한 모든 사람을 즉시 석방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고 했다. 북한 인권 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미 국무부 차원에서 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행사에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 자비에 베텔 룩셈부르크 부총리 등이 참여했다. 조 장관은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이 그 심각성과 규모 면에서 현대 세계에서 견줄 대상이 없는 수준이다”라며 “북 정권은 자국 국민이 바깥세상을 향해 눈을 뜨는 최악의 악몽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라고 했다. 터너 특사도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듣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우리는 가족의 조속한 재결합을 촉구하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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