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세계 1위 찍은 중국차, 이젠 ‘기술 단속’ 나선다
지난해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에 오른 중국이 ‘기술 지키기’에 나섰다. 과거 선진국 기술을 베끼기에 급급했던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이제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기술 수준이 상당히 올라왔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자동차 업체에 주요 부품의 자국 내 생산을 권고하고, 해외 공장 건설에 제동을 걸고 있다. 전기차 시장을 중심으로 가격·품질 등에서 ‘적수’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고, ‘중저가’ 이미지에서도 탈피하며 자신감을 키운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인 전기차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차 수출국에 오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지난달까지 수출이 39% 늘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 생산 규모는 지난해 3016만대로 최대치를 경신하며 전 세계 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중 정부 “주요 부품 국내서 만들어라” 통제
26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자동차 제조 업체들에 자동차를 해외 현지에서 다 만들기보다, 중국 내에서 부품을 생산한 뒤 이를 결합한 부품 덩어리인 ‘녹다운 키트(knock-down kits, KD)’ 형태로 해외 공장에 수출하도록 권고했다. 첨단 기술이 들어가는 주요 부품은 중국 내에서 생산하고, 해외 공장에선 최종 조립·생산만 하라고 한 것이다.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인 전기차 관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것을 우려한 조치다.
인도, 튀르키예 등 신흥 제조 국가 견제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7월엔 자국 자동차 제조 업체 10여 곳에 “인도에 자동차 관련 투자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튀르키예에 투자할 땐 정부와 현지 대사관에 사전 신고하라고 통보했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해외 생산 기지를 잇달아 확대하자 정부가 기술 유출에 제동을 건 것이다. BYD는 지난 1월 우즈베키스탄, 7월 태국에서 공장 가동을 시작한 데 이어 튀르키예, 인도네시아, 브라질, 헝가리 등에서 신규 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는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에 공장을 운영 중인데, 지난 5월 인도에 두 번째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체리자동차와 지리자동차도 각각 스페인과 베트남에서 합작사를 세우고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부품 경쟁력까지 강해져… 공급망 탄탄
중국 차는 ‘저가’ ‘소형’이라는 이미지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중국 내에서 20만위안(약 3800만원) 넘는 가격에 팔리는 고급 전기차 지커를 내년 일본에서 출시할 예정이고, BYD는 이달 중순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한 고급 브랜드 덴자를 100% 인수했다. 자국 브랜드의 점유율이 압도적인 일본 시장에 고급 차로 진출할 만큼 품질과 인지도가 올라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 수출 시장에서도 한국(2021년), 독일·멕시코(2022년) 등을 제친 데 이어 지난해 일본에 앞서며 세계 1위 차 수출국에 올랐다. 올해도 8월까지 작년보다 39% 늘어난 409만대를 수출하며 감소세인 일본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중국 차 수출 가운데 테슬라 등 해외 업체를 제외한 중국 브랜드 비율은 80%로 추정된다. 김준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국 차의 수출 확대는 결국 중국 브랜드가 해외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는 뜻”이라며 “전기차 캐즘이라고 하지만 중국 업체는 계속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자동차 산업 클러스터와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M&A(인수·합병)로 축적한 기술력이 소재·부품부터 제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기차 진출 선언 후 3년 만에 성공한 샤오미와 10년 만에 포기한 애플을 가른 차이는 중국의 엄청난 공급망”이라고 말했다. 2022년 중국 자동차 부품 업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9%로 지난 10년 사이 8%포인트 안팎 늘었다.
중국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한국, 미국, 일본 기업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한 합종연횡을 가속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항구 자동차융합연구원장은 “중국발 글로벌 차 업계 구조 조정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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