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ESG 공시 초안, 지속가능한가?

2024. 9. 2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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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운용한 조직 중에 '대본영'이 있다.

과연 이 공시가 우리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기여할 수 있는 공시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논의하는 좋은 말을 번역한 탁상공론에 불과한가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성보고서에 따라 자발적으로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자율성을 담보할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공시를 강제하는 것은 무익을 넘어 유해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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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공론 현실화는 사회에 해악
실행 전에 득실 충분히 따져야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변호사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운용한 조직 중에 ‘대본영’이 있다. 이곳에서 일본군 엘리트들은 전쟁을 조직하고 전선에 명령을 하달했다. 문제는 이들 엘리트가 전쟁터에서 전쟁을 현실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책으로 이론을 배우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전쟁을 지휘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지금도 일본에서는 ‘대본영의 참모’가 그릇된 엘리트주의와 잘못된 현장 파악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위톈런, <대본영의 참모들>).

이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안)을 보면서 느낀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과연 이 공시가 우리 기업들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것에 기여할 수 있는 공시인가?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논의하는 좋은 말을 번역한 탁상공론에 불과한가 하는 것이다. 탁상공론이 말 그대로 공론(空論)에만 그치면 그들의 이론적인 사고실험(思考實驗)에 불과한 것이어서 사회적인 해악이 없다. 그러나 이런 탁상공론이 실제로 실행되는 경우에는 사회적인 해악이 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목표를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제안된 공시(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하나씩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 기반을 두고 지난 4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발표한 ESG 초안의 완결성(completeness) 및 현실적 실행 가능성(feasibility)에 의문이 있다. ‘공시’란 법적으로 투자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일정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그 이상의 정보는 임의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정보공시는 특정 시점에 그리고 시계열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서 기업에 이들 정보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제공된 정보들은 투자자의 투자 의사 판단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업으로선 자본 조달의 용이성과 자본 조달 비용 절감을 위해서 제공하는 정보를 평가 기준에 따라 높게 평가받도록 경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런 정보가 우리 기업의 관점에서 작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자신도 신뢰하기 어려운 정보만을 제공하도록 하는 경우 이들 정보를 의무공시 대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정보가 우리 기업의 실정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일 작성자 스스로 확신할 수 없는 정보를 공시하도록 한다면 이는 의미 없는 공시를 통해서 기업들에 불필요한 소송 등의 위험을 부담하도록 강제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기업이 지닌 자원은 한정돼 있고 한정된 자원을 불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결국 그만큼 필요한 곳에 자원배분이 어려워진다.

둘째, ESG 공시(안)이 우리 기업의 공시와 관련된 사정을 충분히 반영한 공시 기준인가 하는 점도 의문이다. 한국 기준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에 ISSB를 단순 추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한국이 확립되지 않은 기준을 도입해 타당성을 따져보는 국가 차원의 실험실이 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회계 기준도 국제회계기준(IFRS)을 왜 그리 서둘러 도입해야만 했는지 의문이 있었다.

지속가능성보고서에 따라 자발적으로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기업의 자율성을 담보할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 공시를 강제하는 것은 무익을 넘어 유해한 행동이다. 즉시 멈추고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뛰기 전에 살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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