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샴페인전체주의
'대중 파시즘' 그림자 짙어져
위선적 좌파 지식인 행보
전체주의 유지하는 버팀목 돼
마약처럼 사회 좀 먹는 것은
타인의 삶 책임 못 지는 '착한 말'
이응준 시인·소설가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핵심을 돌파하는 논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녀는 1982년 즈음에 쓴 ‘전체주의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우선, 역사에서 추출되는 전체주의의 특징들을 지적하는데, 곱씹을 만한 항목들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쁜 의도가 아니라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다. 둘째, 언제나 ‘진보’로 인식되는 동향의 소산이었다. 셋째, 전체주의는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좌파 전체주의가 더 악성이며 모든 분야로 확장된다. 넷째, 냉정한 계산에서가 아니라 감정적이다. 다섯째, 군사적 강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민중의 지지가 따른다. 여섯째, 청렴결백(정의로움)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 추진된다.
이 여섯 가지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386 내로남불 대중파시즘’의 속성과도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이 전체주의를 싫어하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전체주의의 권력층이나 그 국민(인민)들이나 공히 ‘병맛’이기 때문임을 밝히면서 이탈리아의 두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와 레오나르도 샤샤에 대해 얘기한다. 모라비아가 데뷔했을 무렵 이탈리아는 파시즘 치하였고 샤샤는 그 시절에 태어나 자란 후배다. 유명하기로는 모라비아에 못 미치지만, 시칠리아 출신답게 마피아 소설들을 바탕으로 추리, 역사, 정치 스릴러를 넘나들며 ‘형이상학적 범죄소설’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남겼다. 모라비아와 샤샤는 소설가라는 것 말고도 국회의원을 해먹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둘에 대해 다 부정적인데, 샤샤에 대해 더 비판적이다. 한데 그 이유가 재밌다. 모라비아는 ‘악당’이고 샤샤는 ‘깨시민적 바보’라는 것이다. 소설은 그럭저럭 봐줄 만한 샤샤가 정치나 인간에 대한 철학으로 펜을 돌리면 유치하기가 역겨운 것도 그런 이유로 든다. 이탈리아의 급진당은 진보지식인 행세를 하는 인기작가 샤샤를 비례대표 앞 번호에 배치했다. 국회의원 샤샤는 후일 정치에 회의(懷疑)와 싫증을 느껴 정치를 그만둔다. 세상에 대해 번뇌 코스프레를 진심으로 하는 ‘도련님’이었던 샤샤와는 달리 공산당 국회의원임에도 불구하고 로마 사교계 파티의 ‘죽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라비아는 닳고 닳은 영혼이었다. 그러니까 시오노 나나미의 말은 그런 샤샤보다는 그런 모라비아가 차라리 더 낫다는 시니컬한 평가인 것이다. 파시즘의 온상은 모라비아 같은 악당 정치인이 아니라, 끝까지 양심이 있는 척하는 샤샤 같은 바보 위선자들이라는 뜻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내가 보기에 인간적인 사회주의란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은, “사회주의는 인간을 위선자로 만들 수밖에는 없다”로, “그런 면에서는 스탈린이 훨씬 일관성이 있다. 바보는 그런 사회가 실현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양심적인 인텔리들이다”는 “악당 중의 악마 스탈린은 실현 불가능한 이념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 정치를 사용했다. 그런 스탈린 전체주의가 탄생하고 유지될 수 있게 한 것이 바보 좌파 지식인들이었다”로, “정치적 센스가 없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정치를 입에 담는 것처럼 해가 되는 것도 없다”는 “저 위에 적힌 전체주의의 여섯 가지 특징들을 이해 못하는 바보들은 정치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든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세상을 돕는 길이다” 정도로 나는 해제(解題)한다.
게다가 요즘은 예컨대, 난민을 다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면서 자기는 경비원이 있는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연예인들이 ‘바보 먹물’들보다 더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그들은 타인의 삶과 죽음을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자신들의 ‘착한 개소리’를 ‘자뻑’하고 정서적인 대중에게서 인기와 이득을 취하는 대신 그들을 ‘지옥으로 가는 예쁘게 포장된 길’로 인도할 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체주의 시대에 어른이었던 모라비아보다 그 시대에 두뇌형성기를 보낸 샤샤가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강남좌파를 샴페인좌파라고도 한다는데 이들의 가장 큰 죄는 아이들과 청년들에게까지 ‘샴페인전체주의’를 중독시키는 것에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체주의를 싫어할 뿐 무섭진 않다고 했지만, 심약한 나는 이 ‘얍실한’ 전체주의가 공포스럽다. ‘샴페인’은 마약의 은어(隱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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