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정치만 남은 교육감 선거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예비 후보에 등록했던 한 후보는 이달 초 기자에게 “선거가 정치색에 물들어 참담하다”고 했다. 그는 평생 교육계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교육 전문가로서 공약도 꼼꼼히 준비했는데, 정치 구호만 난무해 화가 난다는 것이다. 며칠 뒤 그는 출마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 색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나타났다. 플래카드부터 나란히 선 지지자들 옷까지 같은 색으로 통일됐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하게 돼 있다. 출마도 1년 내 정당 가입 이력이 없어야 할 수 있다. 투표용지에는 정당 표시 없이 후보 이름만 인쇄된다. 선거를 정치판으로 만들지 말라는 제도적 장치다. 이번 선거에 나섰던 예비 후보 12명의 기자회견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봤다. 하나같이 빨간색(국민의힘) 아니면 파란색(민주당) 옷이나 넥타이를 착용하고 있다.
각 후보의 홍보물을 살펴보면 더 낯이 뜨겁다. 방재석 중앙대 교수는 출마 선언문에 자신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일대기를 다룬 책 ‘인간 이재명’의 기획단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정신을 가장 치열하게 계승한 이재명’이라고 썼다.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홍보물로 만들어 올렸다. “실수”라며 삭제했지만 의도는 보인다.
보수 성향인 안양옥 전 한국교총 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3대 정부에 걸쳐 교육의 올바른 길을 제시했다’고 적었다.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0여 년간 서울의 교육은 조희연으로 대표되는 좌파 세력에 의해 황폐해졌다” 등 이념 공세에 집중했다.
교육감 직선제는 헌법에 적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 같은 가치를 보장하자는 목적으로 2006년 도입됐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없어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르고 투표장에 간다. 꾸준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논란의 인물’에게 더 유리한 구조다.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산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이번 선거에 당당하게 출마했던 이유다.
교육감 직선제를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나 임명제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다. 시·도지사 후보는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는 교육감 러닝메이트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되레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교육감이 등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최근에야 보수·진보 진영 단일화 기구가 단일 후보를 추대하며 선거 윤곽이 잡혔다. 그런데 보궐선거라 임기가 1년 8개월밖에 안 된다. 학생 교육을 책임지겠다는 이들이 정당에 아부하고 서로 헐뜯으며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곧 또 봐야 한다. 정치가 아니라 교육 정책으로 승부하는 선거는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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