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31] 홈런을 터지다?
분명히 만화는 아니렷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가 한 해 50홈런 50도루를 거침없이 넘어섰다. 그것도 내로라하는 선수가 득실득실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야구 역사를 새로 쓴 날 우리나라 언론까지 난리가 났다.
‘오타니는 7회 초 공격에서 마침내 50번째 홈런을 폭발했다.’ 기자도 흥분했나 보다. ‘폭발하다’는 큰 소리가 나며 터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자동사(自動詞), 곧 목적어가 없는 말이다. 그런데 ‘홈런을 폭발했다’ 하다니 ‘홈런을 터졌다’고 한 셈이다. 굳이 쓰려거든 사동(使動) 접미사 ‘-시키다’를 붙여 ‘홈런을 폭발시켰다’ 해야 옳다. ‘홈런을 터뜨렸다’ 하든지.
난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9회 초 마지막 타석 2사 1·2루에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시즌 51호 홈런을 작렬했다.’ ‘작렬(炸裂)하다’ 역시 자동사여서 목적어와 어울릴 수 없지 않은가. ‘작렬시켰다’ 하거나 ‘51호 홈런이 작렬했다’ 하면 된다.
오타니의 50번째 도루 장면에서도 감탄이 아니라 탄식이 샜다. ‘1회 초 1사 1·2루에서 더블 스틸로 3루 도루를 성공했다.’ ‘성공하다’ 또한 ‘~에’가 앞서야 하는 자동사. ‘도루에 성공하다’나, ‘성공하다’를 타동사로 변형한 ‘도루를 성공시켰다’가 어법에 맞는다.
자동사를 타동사로 잘못 쓰기보다 심각한 일도 있다. ‘호날두는 여전히 맨유를 애정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을 애정해 키우는 분들’…. 한자어 명사 상당수가 접미사 ‘-하다’와 합쳐 동사를 이루지만 ‘애정(愛情)’처럼 행위나 동작을 담지 않은 말은 그럴 수 없다(→ ‘맨유를 사랑하고’ ‘반려동물을 좋아해’). 거친 감정을 드러냈다는 뜻으로 ‘격정(激情)했다’ 할 수 없듯이. ‘기초(基礎)하다’ ‘위치하다’처럼 동작성 없는 명사로 이뤄진 동사가 있기는 하지만 몇몇 예외일 뿐이다.
어릴 적 공휴일이면 옆 동네 학교로 원정 가곤 했다. 도루가 어디 있으며, 홈런이 웬 말이던가. 그 추억에 겨워 오늘도 방망이를 휘두른다. 속절없는 반백(半白)일랑 헬멧으로 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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