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시작부터 흔들리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2024. 9. 2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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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체불 논란 이어 2명 숙소 이탈까지
‘돌봄 외주화로 저출생 해결’ 구상의 한계
공적 지원 강화해 양육 힘든 환경 바꿔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임금 체불 논란에 이어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이 숙소를 이탈했다. 예견된 일이다. 이 사업은 처음부터 목적과 효과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 시범사업의 출발점은 홍콩과 싱가포르의 가사관리사 제도를 한국에도 도입해 보겠다는 서울시장의 주장이었다.

시작 단계부터 진단이 잘못되었다. 애당초 저출생의 주요 원인은 돌봄의 부담이 아니다. 출산 의향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가임기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우선하여 꼽는 비출산 이유는 ‘아이를 낳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냥’,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등인데,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는 이 주요 원인 중 무엇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비용 절감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제도가 표류하기 시작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여 급여를 낮추어야 한다며 마치 높은 급여가 쟁점인 것처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국제노동기구 협약과 실정법에 어긋나는 부당한 주장으로, 인권, 특히 노동권을 침해하고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관점이므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제 미적용은 시장경제와 부합하지 않아 어차피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은 한국 서울에 살며 서울의 물가와 체류비를 감당해야 한다. 서울에서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턱없이 낮은 보수와 불안정한 근로 환경을 감수하며 굳이 가사관리사로 일할 사람이 있을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들은 처음부터 다른 국가를 목적지로 선택하거나, 한국에 입국한 다음 더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가사관리사로 오는 2030 젊은 여성들은 생산직이나 서비스업 등 다른 어떤 사업장에서도 능히 일할 수 있는 우수한 노동력이다. 이들을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로 가사에 붙잡아 놓겠다는 생각은 지금의 노동시장에서 비현실적이다.

설령 전체주의적인 저급여 강제와 제도화에 어찌저찌 성공한다고 해도, 이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의 목적은 돌봄과 가사의 부담 경감을 통한 저출생 완화이고, 이에 따라 현재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의 주업무는 아동 돌봄이다. 그러나 돌봄 비용 절감과 돌봄의 질 유지는 필연적으로 상충한다. 실제로 가사관리사 또는 아이돌보미를 구해 본 사람이라면 아이를 안정적으로 잘 보살펴 줄 신뢰할 만한 돌봄인력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할 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의 관리 면에서 얼마나 많은 유·무형의 노력이 필요한지 알 것이다. 수많은 할머니들이 늙고 지친 몸으로도 무리하며 손주를 보살피고, 보호자들이 결국은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전업으로 돌봄을 하는 이유는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좋은 돌봄을 제공받는 것은 돌봄의 특성상 불가능하고, 때로는 내 근로소득 전부나 그 이상을 지불해도 충분히 좋은 돌봄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돈도 돈이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경제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저출생을 자녀 돌봄의 외주화로 해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은 자녀 돌봄의 공공화가 아니라 외주화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공공 아이돌보미 사업과 결이 다르고, 사업의 방향도 크게 틀어져 있다.

저출생 해소에 필요한 것은 공공성의 강화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와 사회가 키워 줄 수 있는 환경은 저출생 개선에 도움이 된다. 보호자가 자신의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노동 시간이 너무 길어서, 노동 강도가 너무 높아서, 유연근무가 어려워서, 양육 비용에 비해 급여가 낮아서 아이를 낳아도 너무 힘들기만 하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고 나면 아이와 함께할 시간도 없고,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도 어렵다. 가까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려면 추첨운이 따라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다. 경쟁적인 기업 문화에서 양육자는 고립 또는 낙오된다. 이러한 양육에 적대적인 환경이 ‘필요가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라는 답으로 현출되고, 저출생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가 아이를 더 편히 돌볼 수 있는 공적인 지원 체계를 조성해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할 일은 외주화와 착취가 아니다. 공공성의 확보다. 민간 서비스 제공 기관을 통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제공하겠다는 접근으로는, 결국 저출생과 양육에 관한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변호사·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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