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장수 할머니의 “투 플러스 원!”[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살다가 사는 게 막막할 땐 시장에 간다.
국밥 장수 할머니가 늦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소끔 식혀둔 육개장을 퍼주었다.
애들 호떡을 사 먹였다가 지갑을 두고 와 난감해할 때 나중에 들러서 주라던 호떡 장수 할머니.
손사래를 치는 내게 "애기 엄마, 투 플러스 원이야!"라며 할머니가 자글자글 웃는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다가 사는 게 막막할 땐 시장에 간다. 빈 장바구니 하나 들고서 털레털레. 오래된 동네에 동그랗게 파놓은 굴속 같은 시장에는 온갖 푸르싱싱한 것들과 맛깔스러운 냄새와 부대끼는 소란과 억척스러운 활력이, 터질 듯이 꽉 들어차 있다.
살다가 칭찬받고 싶을 때도 시장에 간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시장에 가면 아들내미만 둘이야? 쌍둥이야? 이만치 키우느라 고생했네. 참말로 장하네. 쫄래쫄래 날 따라오는 아이들 뒤로 쫄래쫄래 칭찬들이 따라온다. 그게 어찌나 뿌듯한지.
단골 국밥집에 들렀다. 육개장 4인분에 1만3000원. 요즘 물가엔 말도 안 되게 싼 데다 푸짐하고 맛있어서 든든한 일용할 양식이 된다. 국밥 장수 할머니가 늦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소끔 식혀둔 육개장을 퍼주었다. 구경하는 아이들을 보더니 할머니가 말했다. “어유, 고생했네. 나도 아들만 둘 키웠는데 힘에 부쳐도 크면은 든든해. 뚝뚝해서 재미는 좀 없지만.” 아드님 나이를 묻자 첫째가 58세란다. 어림잡아도 할머닌 70대 후반일 터. 전혀 그 연세로 안 보인다니까 할머니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여기서 50년을 국밥 장사로만 애들 키워 장가보냈어. 근데 만날 장사한다고 애들을 못 봐서 사이가 살갑지가 않아. 평생 미안하지. 애기 엄만 힘들어도 애들이랑 맛있는 거 해 먹고 시간 많이 보내. 언제 다 키우나 싶어도 눈 깜짝할 새 쑥쑥 커선 가버린다. 그냥 사랑만 줘.”
외상을 달아둔 호떡집에도 들렀다. 애들 호떡을 사 먹였다가 지갑을 두고 와 난감해할 때 나중에 들러서 주라던 호떡 장수 할머니. 죄송해서 곧장 드리러 온 길이었다. 호떡 2개에 외상값 3000원을 갚았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아이들이 돈을 건네고 꾸벅 인사했다. 근데 할머니가 돌아서는 아이들을 붙잡는다.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 막 구운 호떡 하나를 건네준다. 손사래를 치는 내게 “애기 엄마, 투 플러스 원이야!”라며 할머니가 자글자글 웃는다. 그러니까 늘 이런다. 시장에 가면, 살아야지. 감사히 살아야지. 뭉클해져 돌아온다니까.
고수리 에세이스트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민주-의협 ‘정부 뺀 협의체’ 논의…李 “정부 개방적으로 나와야”
- 귀국 尹, 마중나온 韓과 대화없이 악수만…24일 만찬 ‘갈등 분수령’
- ‘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 32명 중 30명은 의사…2명 의대생
- 檢, ‘文 前사위 특채 의혹’ 관련 前 청와대 행정관 27일 소환
- 곽노현, 진보 교육감 단일화 경선 탈락…강신만-정근식-홍제남 압축
- 이재명 사법리스크 재점화에…민주당 “법 왜곡죄 상정”
- “거짓말처럼” 하루만에 8.3도 뚝↓…불쑥 찾아온 가을
- 故장기표, 김문수에 “너부터 특권 내려놓으면 안되겠나”
- “연금개혁안 도입되면 75·85·95년생 150만원 더 낼 수도”
- “천석꾼 가세 기울었어도, 독립운동 아버지 원망은 이제 안 해요”[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