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장수 할머니의 “투 플러스 원!”[고수리의 관계의 재발견]

고수리 에세이스트 2024. 9. 2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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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사는 게 막막할 땐 시장에 간다.

국밥 장수 할머니가 늦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소끔 식혀둔 육개장을 퍼주었다.

애들 호떡을 사 먹였다가 지갑을 두고 와 난감해할 때 나중에 들러서 주라던 호떡 장수 할머니.

손사래를 치는 내게 "애기 엄마, 투 플러스 원이야!"라며 할머니가 자글자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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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사는 게 막막할 땐 시장에 간다. 빈 장바구니 하나 들고서 털레털레. 오래된 동네에 동그랗게 파놓은 굴속 같은 시장에는 온갖 푸르싱싱한 것들과 맛깔스러운 냄새와 부대끼는 소란과 억척스러운 활력이, 터질 듯이 꽉 들어차 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
채소 장수, 과일 장수, 생선 장수, 호떡 장수, 국밥 장수들이 좌판마다 평생 팔아온 것을 알알이 겹겹이 늘어놓는다. 할머니 손에 끌려가는 어린애처럼 가지각색 맛깔스러운 것들에 정신이 팔려선 시간이 휘 지나간다. 어렸을 땐 시장 상인을 부르는 ‘장수’라는 말이 무지막지 힘이 센 ‘장수’인 줄만 알았다. 배추 단을 척척 이고, 생선 궤짝을 착착 쌓고, 가마솥을 휘휘 젓는, 마고 할미처럼 억척스럽고 힘센 할머니 장수들은 어찌나 수완도 좋은지. 늘 내 마음을 다짜고짜 움켜잡는다. 요즘 이게 제철이야. 오늘은 이게 좋아. 나 평생 이것만 지었어. 개중에 빛나고 좋은 것들만 골라 장바구니에 한 움큼씩 넣어준다. 빈속처럼 텅 비었던 장바구니가 어느새 둥글고 오돌토돌하고 싱싱하고 뜨거운 것들로 묵직해졌을 땐, 시름시름 앓던 마음 같은 건 깜빡 까먹어 버린다. 맛있는 거 해 먹어야지! 단순한 바람이 오늘 치 기쁨으로 남는다.

살다가 칭찬받고 싶을 때도 시장에 간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시장에 가면 아들내미만 둘이야? 쌍둥이야? 이만치 키우느라 고생했네. 참말로 장하네. 쫄래쫄래 날 따라오는 아이들 뒤로 쫄래쫄래 칭찬들이 따라온다. 그게 어찌나 뿌듯한지.

단골 국밥집에 들렀다. 육개장 4인분에 1만3000원. 요즘 물가엔 말도 안 되게 싼 데다 푸짐하고 맛있어서 든든한 일용할 양식이 된다. 국밥 장수 할머니가 늦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한소끔 식혀둔 육개장을 퍼주었다. 구경하는 아이들을 보더니 할머니가 말했다. “어유, 고생했네. 나도 아들만 둘 키웠는데 힘에 부쳐도 크면은 든든해. 뚝뚝해서 재미는 좀 없지만.” 아드님 나이를 묻자 첫째가 58세란다. 어림잡아도 할머닌 70대 후반일 터. 전혀 그 연세로 안 보인다니까 할머니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여기서 50년을 국밥 장사로만 애들 키워 장가보냈어. 근데 만날 장사한다고 애들을 못 봐서 사이가 살갑지가 않아. 평생 미안하지. 애기 엄만 힘들어도 애들이랑 맛있는 거 해 먹고 시간 많이 보내. 언제 다 키우나 싶어도 눈 깜짝할 새 쑥쑥 커선 가버린다. 그냥 사랑만 줘.”

외상을 달아둔 호떡집에도 들렀다. 애들 호떡을 사 먹였다가 지갑을 두고 와 난감해할 때 나중에 들러서 주라던 호떡 장수 할머니. 죄송해서 곧장 드리러 온 길이었다. 호떡 2개에 외상값 3000원을 갚았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내가 가르쳐 준 대로 아이들이 돈을 건네고 꾸벅 인사했다. 근데 할머니가 돌아서는 아이들을 붙잡는다. “둘이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 막 구운 호떡 하나를 건네준다. 손사래를 치는 내게 “애기 엄마, 투 플러스 원이야!”라며 할머니가 자글자글 웃는다. 그러니까 늘 이런다. 시장에 가면, 살아야지. 감사히 살아야지. 뭉클해져 돌아온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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