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투자 권유”…돼지 도살 사기
[KBS 전주] [앵커]
KBS가 마련한 연중기획 순서입니다.
미국의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SNS로 말을 걸어온다면 대부분 사칭부터 의심할 겁니다.
그런데 영상통화로 일론 머스크와 직접 대화하면 어떨까요?
SNS로 접근해 친분을 쌓은 뒤 돈을 뜯어내는 '돼지 도살 사기', '로맨스 스캠' 범죄에 딥페이크 기술까지 동원되고 있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7월 정 모 씨는 SNS를 확인하곤 놀랐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친구 신청을 해온 겁니다.
[정 모 씨/가명/'돼지 도살 사기' 피해자 : "설마 진짜겠어? 일론 머스크는 좀 특이한 행동을 많이 한다. 팬들하고 비밀리에 그냥 이렇게 툭 (메시지를) 던져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테슬라 신분증을 보내왔고, 여권까지 찍어 보여줬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말할 때마다, 언론 보도와도 일치했습니다.
[정 모 씨/가명/'돼지 도살 사기' 피해자 :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이라 지금 일본이라고.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보니까 진짜 갔더라고요. 좀 이따가 그라임스(머스크 연인) 공연 봐야 해, 또 연락할게. 이러면서…."]
정 씨가 품었던 의심은 곧 단박에 풀렸습니다.
직접 영상통화를 한 겁니다.
[일론 머스크 사칭범 영상통화 : "일론? 정말 일론 맞아요? (잘 지내?) 뭐, 괜찮아요. (널 사랑해 알지?) 저도요, 친구로서!"]
한 달 넘게 이어진 대화에 친밀감이 쌓였을 때, 자칭 일론 머스크는 가상화폐 투자로 돈을 불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의 투자 권유에 홀린 듯 돈을 보낸 정 씨.
모두 조작이고, 영상통화도 '딥페이크'였단 걸 알았을 땐 이미 6천6백만 원을 뜯긴 뒤였습니다.
정 씨가 당한 수법은 '돼지 도살 사기'입니다.
돼지를 살찌우듯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방심하게 만든 뒤, 거액을 가로채는 방식입니다.
또 감언이설로 현혹해 기만한다는 점에서 '로맨스 스캠'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나 표적이 될 수 있고, 쉽게 걸려들 수 있습니다.
[임명호/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 "굉장히 중요한 일들이 왔을 때, 우리는 이성적인 회로를 발동시키지 못합니다. 아주 똑똑하고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상황의 참여자가 됐을 때는 대부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파병 군인 등을 사칭해 친분을 쌓고, 해외 배송료나 통관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수법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정 씨 사례처럼 아예 유명인을 사칭해 투자를 요구하는 방식도 많아졌습니다.
피해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올해 2월부터 로맨스 스캠을 따로 분류해 통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7개월 새 920건, 피해 액수는 545억 원에 달합니다.
문제는 일반적인 전화금융사기와 다르게 로맨스 스캠은 구제가 까다롭다는 점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전화금융사기는 피해자가 요청하는 즉시 은행이 사기꾼의 계좌를 동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맨스 스캠은 이런 지급 정지 제도의 적용 대상이 아닙니다.
21대 국회에서 로맨스 스캠 피해도 구제받도록 '다중 사기 범죄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계류하다 결국 자동 폐기됐습니다.
전문가는 이런 신종 범죄에 발맞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또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SNS로 호감을 표시한다면 꼭 경계부터 하라고 강조합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김동균/그래픽:전현정
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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