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검은 황금' 찾느라 홍게 '황금어장' 잃을 판···포항 어민, 깊은 한숨
“본격 시추 시작 땐 진동·소음으로 어장 황폐화…폐업 위기”
오징어 등도 피해 우려…석유공사 “어업 활동 영향 없을 것”
“황금어장인데 석유가 난다고 하니 걱정이죠. 우리에겐 생계 터전을 잃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항에서 지난 20일 만난 이경태씨(43)가 어선 어창(잡은 물고기를 보관하는 곳)에 들어 있는 홍게를 정리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9.77t짜리 홍게잡이 어선 제철호의 선장이다. 젊은 시절 6년 동안 원양어선을 타고 다니며 모은 돈을 털어 마련한 어선이다. 제철호로 잡는 홍게는 그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준다.
이씨는 “포항 영일만 앞바다는 동해안에서 홍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라며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되면 생계 터전을 잃게 된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진만 구룡포연안홍게선주협회 회장(62)도 마찬가지다. 그는 3년 전부터 영일만 탐사를 해온 한국석유공사와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에는 탐사 지역과 어장이 모두 겹쳐 3개월가량 조업에 나서지 못했다. 홍게를 잡지 못해 발생한 손실만 수천만원에 이른다. 선원들을 고용하며 미리 줬던 선불금 500만원도 받지 못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탐사로 인해 받은 피해도 아직 보상받지 못했다. 석유 탐사를 한다며 우리 어업인들 어망을 멋대로 훼손해 발생한 손해도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성토했다.
정부의 포항 앞바다 동해 가스전 탐사(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앞두고 포항지역 어민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정부가 예상하는 해역이 홍게 등 어자원이 풍부한 황금어장이어서다.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오는 12월부터 동해 8광구와 6-1광구 북부에 걸친 대왕고래 가스전 후보 해역에서 탐사 시추를 벌일 예정이다. 탐사 시추는 물리조사를 통해 파악한 지형 구조가 실제로 일치하는지, 자원 매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문제는 탐사 시추 구역이 홍게 집단 서식지라는 점이다. 포항지역 홍게잡이배는 모두 33척으로 대부분 탐사 시추가 예정된 해역에서 홍게를 잡고 있다. 이 해역은 수심이 최대 1700m에 달해 홍게가 서식하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김 회장은 “80∼90%의 어장이 탐사 구역에 몰려 있다. 홍게값이 가장 비싸지는 기간이 11~2월 사이인데 이때 조업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며 “탐사가 아닌 본격적인 시추가 시작되면 진동과 소음으로 어장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 사실상 시추와 동시에 폐업 위기에 놓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포항지역 홍게잡이 어민들은 석유공사로부터 탐사 용역을 맡은 하도급 업체와 2021년부터 마찰을 빚어왔다. 어민들이 통발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띄워놓은 ‘부이’를 업체가 탐사를 이유로 절단해버려서다. 이씨는 “통발 200개로 구성되는 어망 한 개를 만드는 데 1300만~1500만원이 들어간다”며 “부이를 절단하면 통발을 찾을 길이 없다. 최근 3년간 부이 절단 등으로 어민들이 본 손해가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실제 탐사 업체 대표는 부이를 절단하도록 지시한 혐의(재물손괴)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일부 어민에게는 17억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경북 동해안에서 잡힌 홍게는 2만2801t으로 816억5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홍게뿐만 아니라 오징어 등 다른 어종에 대한 피해도 우려된다. 해당 해역에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서다.
포항시 관계자는 “오징어군이 올해 어떻게 형성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해당 해역에서 다양한 조업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며 “탐사 전에 어민들과 협의를 해달라고 석유공사 측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시추선이 시추 위치에 고정된 상태로 작업을 진행해 어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어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시추작업 전반에 설명하고 의견을 들어볼 예정”이라며 “시추지역에 설치된 어구에 대해서는 향후 현장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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