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문화유랑]기억할 만한 작품 ‘로봇 드림’

기자 2024. 9. 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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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5일 재개봉한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9월이 시작되면서 자주 흥얼거린 노래가 있다. ‘Do you remember…’로 시작하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셉템버’(September). “말해줘요. 당신은 기억하나요? 우리가 춤추던 9월에는 걱정 없는 나날뿐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춤추던 9월은 황금빛 꿈이 빛나는 날들이었다는 것을.” 가사는 아련하지만, 무척이나 흥겨운 곡이라 절로 몸이 들썩이며 리듬을 타게 된다. 1978년 발표하여 번들거리는 1980년대에 꽤 유행한 사랑 노래.

현란했던 시절의 기억만으로 9월 들어 ‘셉템버’가 머릿속을 맴돈 것은 아니다. ‘셉템버’를 흥얼거리며, 다정한 개와 로봇을 생각했다. 올해 3월13일 개봉하여 4만8000명의 관객이 본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의 주제곡이 ‘셉템버’였다. 주제곡의 계절을 맞아서, 9월25일 메가박스 단독으로 재개봉을 했다.

<로봇 드림>은 올해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돌아갔다. 아쉬웠다. <로봇 드림>이 아카데미상을 받았다면 더 길게 상영했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 <로봇 드림>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원작도, 감독도 유명하지 않고 스페인 애니메이션도 낯설지만, 그래도 5만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나름 성공이다. 지금도 예술영화, 독립영화는 관객 1만명이 넘으면 적어도 실패는 아닌 것으로 여긴다.

올해 6월12일 개봉하여 874만명이 본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에 비해 <로봇 드림>의 흥행 성적은 초라해 보이지만, 작품성으로 따진다면 전혀 뒤지지 않는다. 디즈니와 픽사가 선두 주자인 할리우드와 <명탐정 코난>과 <슬램 덩크> 등 시대를 초월하는 흥행작부터 <블루 자이언트>와 <룩 백> 등 작가적인 기운이 물씬 풍기는 작품까지 다양한 작품을 양산하는 일본이 애니메이션 산업을 주도하고 있지만, 종종 의외의 곳에서 걸작이 튀어나온다. <로봇 드림>은 스페인의 파블로 베르헤르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스페인과 프랑스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은 미국의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사라 바론의 그래픽 노블.

<로봇 드림>에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개와 오리, 너구리 등 다양한 동물로 묘사된다. 1980년대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홀로 사는 도그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밤이면 TV를 보다 잠든다. 도그는 홈쇼핑 채널에서 본 ‘로봇’을 주문하여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다. TV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 거리에서 핫도그를 사 먹고, 센트럴파크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그들은 친구이자, 연인이고, 가족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연한 사고로 도그와 로봇은 헤어진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지만, 다시 만나지 못한다.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도그와 로봇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면서.

<로봇 드림>은 관계와 성장을 말한다. 홀로 살아가던 도그는 로봇과 일상을 공유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인생에서 절대적임을 알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 순간에는 잘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 순간, 나의 말과 행동이 달랐다면 모든 미래가 달라졌겠지. 모든 존재는 어리석고, 슬프다. 그럼에도 모든 과거는 소중하다. 함께한 과거가 있기에, 이제 도그와 로봇은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만나지 못한다 해도.

파블로 베르헤르 감독은 말한다. “만약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잃더라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들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나온 모든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로봇 드림>을 보고 나서, 과거의 그들을 떠올렸다. 사랑했던 이들, 상처를 줬던 이들, 좋거나 나쁘거나 매 순간 함께 있었던 이들. 그들과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한 과거는, 내 안에 나의 일부로 남아 있다. 과거의 유산을 통해 지금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로봇 드림>은 대사가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음악이 무성영화처럼 흐르고, 몸짓과 작은 소리만으로 모든 것이 전해진다. ‘움직이는 그림’이 생명으로 살아나는 순간을 오랜만에 <로봇 드림>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답고 사려 깊은 작품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더 많은 이들이 <로봇 드림>을 만나기를 바란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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