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42) 참성단
1971년 참성단 사진과 비교되는 현재 모습을 찍기 위해 마니산을 올랐다. 만만해 보이는 472m 높이의 마니산 등산은 출발 10분이 지나자 앞서가며 다정하게 셀카를 찍던 연인들의 휴대폰을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주고받던 대화도 끊기게 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은 한걸음에 올라가는 게 벅찼고 바위돌덩이가 얽혀 있는 ‘암릉’ 구간이 나타나자 숨이 ‘헉’하고 막혔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손도 발처럼 활용하는 이 등산로를 단군이 올라가 마니산 정상에 단을 쌓고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곳이 참성단이다.
이후 고려와 조선 왕조는 매년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 길로 행차했다. 국가 행사였지만 왕 대신에 관리가 참성단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평소 운동 부족인 왕이 마니산 꼭대기를 오르내렸으면 승하(昇遐)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왕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너무나 힘이 들어 하산하던 등산객에게 “참성단까지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었는데 시간은 말 안 해주고 “그냥 쉬엄쉬엄 올라가세요”라고만 했다. 다시 내려갈 수도 없고 이를 악다물 힘마저 사라질 순간, 참성단이 보였다. ‘정상이다!’라는 외침보다 ‘살았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참성단 사진 촬영 때문에 올라왔다고 하자 관리인이 “운이 좋다”고 했다. 작년에 왔으면 사진을 못 찍었다고 했다. 무속인들이 야심한 밤, 참성단에서 벌이는 굿판 탓에 참성단 훼손 위험이 커져 2019년 봄부터 2023년 여름까지 출입문을 폐쇄했다고 했다. 불빛 한 점 없는 가파른 산을 굿하는 데 필요한 도구까지 짊어지고 올라온 무속인들이 신력(神力)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체력만은 인정해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기(氣)가 가장 세다’는 참성단의 1971년 사진에서 등산객들은 돌계단을 밟고 제단 위까지 올라섰다. 참성단이 하늘로 통하는 관문이라 천기(天氣)를 받으려 하늘 끝까지라도 올라갈 기세다. 2024년 사진에 보이는 평평하고 네모반듯한 참성단 제단은 개천절 제례와 전국체전 성화 채화식을 제외하곤 출입금지다. 이제 정상에서 내려갈 일만 남았다. 하산 길도 계단지옥이다. 난간 줄을 잡고 내려가면서 ‘세상에 의지할 데가 있다는 게 행복이다’를 무릎 관절이 시큰하게 느꼈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 보았네’란 시가 있지만 마니산 봄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내려갈 때 뛰지 마세요’ 표지판이 ‘내려갈 때 구르지 마세요’로 보였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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