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제주…우리도 있소”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 재래종
육량 위주 한우 개량 정책 탓 급감
제주 전역 뒤져 순종 수집해 사육
천연기념물 지정, 혈통 보존 나서
2030년엔 4000마리로 늘릴 계획
“제주흑우는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옛 기록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오랫동안 제주에서 길렀던 재래종입니다. 제주 고유의 생물자원인데 한때 멸종위기까지 갔죠.”
지난 24일 제주시 노형동의 제주도 축산생명연구원 축사. 흔히 봤던 누런 빛이 아니라 반지르르 윤이 나는 까만 털을 지닌 소를 가리키며 김대철 제주도 축산생명연구원장이 말했다. 제주에서만 기른다는 제주흑우다.
<세종실록> 등을 보면 고려시대 이후 제주흑우는 우수한 고기맛으로 임금의 생일상 등에 오르는 데 공출될 정도였다. 사육 역사도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 전역을 순회하면서 제작한 ‘탐라순력도’에는 제주흑우 사육 장면이 있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 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 기원전부터 제주흑우가 사육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긴 역사를 지닌 제주 토종 가축이다.
하지만 제주흑우는 일제의 말살 정책과 4·3, 한국전쟁 등 전란을 거치고 정부의 한우 개량 정책, 농업 기계화 등의 영향으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육량 위주의 소 산업 정책은 상대적으로 몸집도 체중도 작은 제주흑우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제주흑우는 한우에 비해 몸집이 작다”면서 “일반 한우가 30개월에 출하된다면 제주흑우는 이보다 6개월 정도는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제주흑우가 도태 위기에 처하자 1992~1993년 도 전역을 뒤져 순종 제주흑우 10마리를 수집해 사육하면서 본격적인 보존에 나섰다.
김 원장은 “인공수정 등을 통한 증식사업으로 제주흑우의 명맥을 다시 잇기 시작했다”며 “2004년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 한우 품종의 한 계통으로 제주흑우가 공식 등록됐고, 2013년에는 제주흑우의 기원과 역사, 혈통의 고유성 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제546호)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제주특별법에 제주흑우 보호와 육성을 위한 조항이 생겼고 관련 조례도 있다. 제주흑우 사육 농가와 흑우 판매업소는 모두 제주도의 인증을 받아야 하고, 흑우와 흑우의 정액 또는 수정란은 도외로 반출할 수 없다.
이 같은 보호 정책에 따라 현재 제주흑우는 축산생명연구원에서 혈통을 보존 중인 271마리를 포함해 도 전역에서 1280여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도태 위기에서는 벗어났지만 사육 마릿수가 많지 않다 보니 제주흑우는 한정판으로 꼽힌다. 제주에서도 제주흑우를 맛보는 것은 흑우 전문 음식점에서만 가능하다.
김 원장은 “한 해 270~280마리 정도가 출하돼 도축된다. 하루 한 마리도 안 되는 셈”이라며 “최소 3000마리 정도 사육했을 때 900~1000마리 출하가 가능하고, 차별화된 브랜드로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흑우는 한우보다 30%가량 비싼 가격에 팔린다.
제주도는 앞으로 제주흑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2030년까지 사육 마릿수를 4000마리까지 늘릴 계획이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제주흑우와 한우의 수정란을 농가에 공급하는 등 제주흑우 개량을 추진 중이다. 작은 몸집으로 인한 낮은 경제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흑우와 한우 사이에서 태어난 ‘흑한우’도 유전자 검사로 인정받으면 제주흑우에 포함된다. 김 원장은 “우량 개체로 선발한 제주흑우와 한우의 수정란을 농가에 공급함으로써 유전적으로 우수한 흑한우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제주흑우의 증식과 체계적인 개량을 통해 사육 마릿수와 농가 소득을 늘리고 제주흑우의 경쟁력을 한우 수준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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