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폭우·가을장마… 태풍 북상도 더 잦아진다 [날씨+]

박유빈 2024. 9. 2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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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0㎜ 넘는 비 관측 이래 처음
태풍 늘어나면 집중호우도 그만큼 늘어

지난 20일부터 주말에 남부지방에 매우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경남 김해에서 자동차가 물에 잠겨 차 지붕에 올라가 있던 남성의 사진, 많이들 보셨을 텐데요. ‘가을 폭우’나 ‘가을 장마’라는 말도 등장했습니다. 주말 동안 내린 비가 얼마나 많은 양인 걸까요?

26일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이번 달 경남 창원에 내린 강수량은 총 540.9㎜입니다. 이달 들어 창원에 비가 조금이라도 내린 날은 총 5일인데, 강수량이 0.2㎜(2일), 10.2㎜(11일), 1.1㎜(22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이달 강수량은 모두 20일(131.7㎜)과 21일(397.7㎜)에 쏟아진 셈입니다.
지난 21일 경남 김해에서 폭우로 도로가 침수돼 한 남성이 차량 위로 대피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작성자는 김해 내덕동에서 사진을 촬영했다며 “도로 앞은 지하차도, 옆은 산이라 물이 갑자기 불어난 것같다”고 적었다. 뉴스1
21일 창원에 내린 비는 전에 볼 수 없던 기록입니다. 기상청은 현재처럼 관측망을 갖춘 창원 기상 관측을 1985년부터 시작했는데 관측 이래 일강수량이 300㎜를 넘은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나오는 공식 기록으로는 일강수량이 200㎜를 넘는 날도 227.1㎜가 내린 1998년 9월30일이 유일합니다.

9월 한 달 강수량이 500㎜ 이상 내린 해도 과거에 1999년과 2016년뿐이었습니다. 1999년 9월에 598.9㎜, 2016년 9월에 522.7㎜가 기록됐는데, 비가 내린 양상은 올해와 전혀 다릅니다. 먼저 2016년에는 비가 0.1㎜라도 내린 날이 총 13일이었습니다. 강수일 자체가 많아 총 강수량도 늘었습니다.

지난 21일 시간당 최다강수량은 104.9㎜로 매우 강한 비가 내렸는데 2016년 9월에는 가장 비가 많이 내린 날인 2일, 147.5㎜가 내릴 때 1시간 최다강수량이 22.4㎜에 그쳤습니다. 시간당 최다강수량이 가장 많았던 날은 다음 날인 3일 48.1㎜로 집계됐습니다.

1999년 9월 창원은 어땠을까요? 가장 비가 강하고 많이 내린 날이었던 20일, 일강수량 165.7㎜에 1시간 최다강수량은 48.7㎜이었습니다. 이 역시 강한 비지만, 한 시간 동안 내린 비의 최다치로 비교하면 올해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집중호우가 이어진 21일 경남 창원터널 진입로 인근 도로에 물과 토사가 흘러내리고 있다. 뉴스1
바로 옆 김해도 사흘간 강수량 400㎜ 넘는데 9월 강수량이 400㎜을 넘은 해도 관측 기록상 처음입니다. 김해기상관측소가 2008년 비교적 최근 개소했지만, 9월 강수량이 300㎜를 넘었던 해는 2012년(300.5㎜)과 2016년(391.3㎜)만입니다. 하루 최다강수량은 120㎜ 수준이었고 1시간 최다강수량은 25㎜이었는데, 이달 내린 비는 439.3㎜인 데다 지난 21일 1시간 최다강수량도 81.8㎜로 매우 강한 편이었습니다.

지난주 후반 기압계를 돌이켜보면, 제14호 태풍 ‘풀라산’이 중국으로 갔다가 열대저압부로 약화한 뒤 우리나라로 방향을 틀며 많은 수증기를 끌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태풍 열기가 쌓였던 이때, 북쪽에서는 ‘때마침’ 찬 공기가 내려오며 수증기가 많은 비로 바뀌어 내린 건데요.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남쪽에서 태풍이나 열대저압부가 열기와 수증기를 안고 들어올 때 이 수증기를 비구름으로 바꿔주는 요소가 필요하다”며 “그 역할이 북쪽 찬 공기”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찬 공기가 남하하며 수도권은 비가 내린 뒤 선선해졌지만, 남부지방에서는 찬 공기와 열대저압부 수증기가 부딪히면서 비구름대가 매우 강하게 발달했다”고 부연했습니다.
지난 21일 부산 강서구 구랑동 한 도로가 집중호우로 잠겨 차량이 고립돼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우 통보관은 “9월 태풍·열대저압부 북상, 찬 공기 세력 강화 모두 매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올해 유난히 여러 ‘기상학적 기회’가 잘 맞아떨어졌다”며 “서해 온도가 높아 중국에서 나온 열대저압부가 세력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이번 비를 단지 기후변화적 영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장마특이기상연구센터장인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일반적으로 강수량과 기후변화를 연결할 때와 지난 주말 강수는 경우가 많이 다르다”며 “태풍이 북상하며 이미 열기를 한반도 근처로 가져왔고, 열대저압부로 변질돼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많은 수증기를 다시 가져온 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 때문이라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는데요.

다만 가을철 이렇게 큰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손 교수는 “지구온난화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더 늘어날 것이라 예상한다”며 “태풍의 직접적 영향에 의한 집중호우가 늘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향후 중위도까지 올라오는 태풍이 늘다보면 지난 비처럼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온대저기압화 과정도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태풍이 늘다보면 지난 주말처럼 태풍의 직·간접 영향을 받을 확률도 증가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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