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당했다" 고성 난무한 국회···그래도 민생법안은 처리
26일 국회 본회의는 시작부터 여야가 거세게 충돌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여당 몫 추천인사 선출안이 부결되자 여당은 "사기 당할 줄 몰랐다"고 야당을 성토했고, 야당은 여당을 향해 "윤석열 정권의 인사 문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맞받았다.
이날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총 투표수 299표 중 △가 189표 △부 108표 △무효 2표로 부결됐다. 방송법 개정안은 △가 189표 △부 107표 △무효 3표로 부결됐다.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은 △가 188표 △부 109표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가 188표 △부 108표 △무효 3표로 부결됐다.
또 노란봉투법은 △가 183표 △부 113표△기권 1표 △무효 2표로 부결됐다. 25만원 지원법은 △가 184표 △부 111표 △무효 4표로 부결됐다.
방송4법은 공영방송인 KBS·MBC·EBS의 이사 숫자를 늘리고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등 외부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한편 방통위 의결 정족수를 현행 5인 중 2인에서 4인으로 늘리는 내용이 담겼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동시에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는 게 골자다. 21대 국회에서도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돼 본회의 재표결을 거쳐 부결됐었다.
25만원 지원법은 전 국민에게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원 금액은 지급 대상에 따라 25만∼35만원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이 법안들은 국회에서 재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이 필요했는데, 의결정족수 미달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앞서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주도로 이들 쟁점법안을 강행 통과시켰다. 이에 윤 대통령은 여야 합의없는 법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방송4법에 대해선 공익성을 훼손한다는 점, 노란봉투법의 경우 불법파업 조장을 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25만원 지원법 역시 예산당국의 예산편성권을 훼손하고 재정건전성 악화 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이날 6개 법안이 모두 부결되자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은 본회의 장 밖으로 나가 국회 로텐더홀에서 "민생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여당을 비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긴급 규탄대회를 열고 "집권여당의 민생포기, 개혁방해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도대체 언제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용산의 거수기 노릇을 하겠다는 것인가. 민주당이 이 무도한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반면 이날 모성보호 3법,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 등 비쟁점 민생 법안들은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모성보호 3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 △고용보험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배우자 출산 휴가 기간을 현행 10일에서 20일로 늘리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가능 대상 자녀 연령을 8세에서 12세로 상향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소지하거나 시청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구성됐다.
이밖에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 채무 불이행시 양육비 이행관리원이 양육 부모에게 미리 일정 금액의 양육비를 대신 지급하고 지급액은 추후 채무자로부터 회수하는 내용이 담긴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사업주가 보건조치를 통해 예방해야 할 건강장해에 '폭염·한파에 장시간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추가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의 법안들도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는 지난달 초 민생 논의를 목적으로 하는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 정책위의장이 만나 여야 간 이견 차이가 작은 민생 법안을 우선 처리하자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한편 이날 인권위 여당 몫 상임위원 추천인사 선출안이 부결되자 여당 의원들은 거세게 항의하면서 본회의 초반 분위기가 급랭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 야당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회 이숙진 위원 선출안이 표결 결과 총투표수 298표 중 △가 281표 △부 14표 △기권 3표로 가결됐다. 반면 여당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회 한석훈 위원 선출안은 표결 결과 총투표수 298표 중 △가 119표 △부 173표 △기권 6표로 부결됐다.
인권위원은 국회가 여야가 2명씩 총 4명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위원장 포함 총 4명을,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
민주당은 이번 본회의에 앞서 야당 몫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이숙진 전 여성가족부 차관을 추천했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2021년부터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해온 한석훈 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추천했다.
야당 몫 인사 선출안은 가결된데 반해 여당 몫 인사 선출안이 예상 밖에 부결되자 여당은 "완전히 당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여당의 요구로 30분간 본회의가 정회되기도 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제가 국회의원 5년차인데 참담한 심정으로 포디엄(연단)에 서기는 처음인 것 같다. 너무 괴롭다"며 "얼마전 경찰청에서 보고를 받았는데 우리나라 사기범죄가 점점 창궐해서 우려스러운 상황이라 하는데 국회 본회의장에서도 제가 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 한 번 이 사태에 대해 저는 심심한 유감을 표하며 이와 같은 사태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민주당 여러분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기를 당했나. 국민이 사기를 당하지 않았나"라며 "윤석열 정권에 대해 온 국민이 지금 분노하고 있고 이런 정권은 처음본다. 국민이 사기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의 인사 문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며 "윤 정권의 인사가 잘못된 부분에 대해 견제할 수 있는 곳은 입법부밖에 없다. 한 후보가 국가인권의 책임을 지는 그 자리에 마땅치 않다, 부적절하다는 것을 강력히 경고하고 윤석열 정권의 잘못된 인사에 대해 앞으로도 확실히 견제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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