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의 도시이야기] 부산 원도심 부활에 대한 근원적 생각

강동진 경성대 교수 2024. 9. 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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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경성대 교수

1990년대 이후 국내 지방 도시들의 쇠퇴가 본격화되며, 그 중심체였던 원도심의 퇴락이 급격히 이어졌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원도심인 서·중·동·영도구(이하 원도심 4개구)의 쇠퇴 양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인구소멸지대라는 불명예는 물론 전국 차원에서 축소시대의 대표 사례로 소개될 정도다.

원도심 4개구의 경제지수는 부산 최하권이다. 그래서 살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며 불만의 시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원도심 4개구의 경제지수를 합쳐보니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종사자수, 사업체수, GRDP(지역내총생산)를 합쳐보니 부산 최고가 되지 않는가. 해운대구, 부산진구, 강서구를 크게 상회한다. 무엇을 말하는가. 원도심 4개구는 충분한 경제적 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또 지역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해 아닌 오해 가운데 패배 의식에 젖어 들었던 것이다.

경직된 시야와 정보는 조급증을 자극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신을 바꾸는 데에 매달리게 했다. 결과적으로 혼돈의 획일화와 과밀의 인공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빠져 들고 말았다. 가장 큰 손실은 원도심의 정체성 파괴다. 부산 정체성의 소멸과도 다름없다. 이것이 부산 미래의 힘인데도 스스로 지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묘수가 없을까. 통합을 권해 보려 한다. 사실 원도심 4개구에 대한 통합 주장은 케케묵은 얘기다. 2017년에도 반짝했었다. 그런데 왜 통합 논리가 진전되지 못했을까. 부작용에 대한 과잉 해석, 불공평에 대한 우려, 정치적인 이유 등이 주원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 시대를 지났고, 인구소멸지역이라는 오명 속에 처한 절박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과연 똑같은 걸림돌로 작용할까. 분명한 것은 통합이 가져올 혜택과 통합으로 인한 부작용의 크기를 견주어서 큰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 생존을 위한 기로에 서있는 지금, 우리의 선택은 도전적이어야지 않겠는가.

지난 자료를 들추어 보니 지역 형평성에 대한 논리 부족이 통합의 주된 장애요인으로 꼽힌다. 내면으로는 공공행정부문 축소에 대한 염려가 최대 걸림돌이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부분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대응하는 기능 조정과 신문화·산업 유치를 통해 얼마든지 상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지역 특화 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가장 커 보인다. 똑같은 초고층 건물로 대변되고 있는 원도심의 미래를 차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지역별 특수성이 살아나며 부산 전체 경쟁력이 고도화되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창의의 시대다. 플러스(+)가 마이너스(-)를 크게 초월한다면 도전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부가 염려하는 마이너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수와 다량의 플러스를 막아버린다면 이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통합에 대한 현실 감각을 키워보기 위해 국제 항구도시들을 살펴본다. 함부르크 멜버른 시드니 상하이 요코하마 시애틀 리버풀 오사카 싱가포르 등.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원도심의 공통 특성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19세기 전후로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고, 자부심 가득한 문화와 경제 활력의 심장 같은 중심체로 기능하여 쉴 새 없이 사람이 몰려든다. 또 원도심 중심지대를 위요하거나 연계된 지역 내 주민의 정주 만족도가 최상위급이라는 것이다. 즉, 도시 철학과 생존 가치가 상호 조화를 이루며, 그것이 도시의 차별화된 브랜드로 떠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현 시대는 우리만의 것으로 이해되는 로컬리티(locality)를 중시한다. 이것의 보호와 특화, 그리고 산업화를 지역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이 시대, 부산 원도심의 통합은 강력한 로컬리티를 지향하기 위한 최적의 방안으로 여겨진다. 통합이 섞여서 몰개성(沒個性)되거나 흐리멍덩한 희석이 아니라 분명하게 지역색을 살려내고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어 내는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통합에 따른 지원과 혜택도 이어 질 것이다. 다만, 지역별 개발 편차로 인한 형평성 논란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풀어야 할 과제일 뿐이다.

원도심의 낡은 행정 체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모든 것이 융합되고 공생을 추구해야 할 이 시대에, 낱낱이 분리된 이 체제를 뛰어넘지 않는다면 원도심의 미래, 아니 부산의 미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어찌어찌 버텨는 가겠지만, 그 이상의 기대는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논지는 혁신적인 도시 관리를 위한 집중과 선택에 대한 요청이다. 통합이 원도심 부활을 위한 진정하고도 올바른 방향이라면 당장의 손실이나 치열한 논의의 시간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고, 형평성을 갖추기 위한 또 다른 혁신도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부산에는 높고 험해 포기했던 산을 다시 넘어 보려하고, 큰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 있는 통찰력과 소통의 추진력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절실해 보인다. 미래와 후대를 위해 대승의 결단을 이끌어줄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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