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는 진짜 3차 세계대전을 원하는 걸까 [세상읽기]
박록삼 | 언론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난 지 2년7개월을 훌쩍 넘겼다. 공식 발표가 없으니 정확한 피해 규모야 알 수 없다.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합쳐 사상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계된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이미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고 평할 정도다. 어떻게 바라보든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전쟁임에도 여전히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침공’의 주체는 표면적으로 러시아다. 국제정치 측면에서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인 셈이다. 그렇기에 미국이 러시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동쪽으로 1인치도 늘리지 않겠다’는 1990년 독일 통일 당시 약속이나, 1997년 러-나토 기본협정 체결 당시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신규 가입 회원국 외에는 더 이상 확장이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거듭 어겼음에도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등이 “미국 등 서방의 약속 위반인 만큼 전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반러시아 분위기는 쉬 바뀌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전세계에서 극우 파시스트 집단으로서 유일하게 탱크와 대포 등 군사력을 갖춘 아조우(아조프) 연대가 있는 국가다. 네오나치 세력인 아조우 연대가 러시아계 주민들인 우크라이나 동쪽 돈바스 지역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러시아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도 쉬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전쟁이 시작된 뒤 미국과 서방이 1500억달러(한화 약 200조원)가 넘게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쏟아부으며 러시아와 사실상 직접적 전쟁을 치르면서도 마치 제3자인 양 태도를 보이는 것의 기만성을 비판하기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전쟁 이후 해외 러시아 대외자산 2800억달러(약 380조원)를 동결한 뒤 이 중 일부를 압류해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조치가 나왔지만 이 기가 막힌 반자본주의적 결정의 적정성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상황조차 아니다. 2017년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등 30년 넘도록 군사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하고 포위해가는 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찢어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 우크라이나의 현대사를 설명하거나 같은 슬라브족으로서 키예프 루스 공국 전후 최소 1천년에 걸쳐 이뤄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기구한 역사적 관계를 되짚는 것으로 갈음해 보도되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그러는 사이 미·러는 직접적 군사 대격돌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11일(현지시각)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등을 제공해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 계획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전쟁 관련 자신의 ‘승리 계획’에 대해 연설하며 미국의 결심을 촉구했다. ‘승리 계획’의 핵심은 미국과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 등 무기 지원을 받아 러시아 본토를 공격해서 러시아를 압박한 뒤 종전 협정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미 러시아는 장거리 미사일 사용은 나토와 미국의 직접적인 참전인 만큼 본토를 공격당할 경우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인류는 이미 제3차 세계대전 과정에 진입했을는지 모른다. 이 전쟁이 현실화하면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럽다. 그저 기우처럼 쓸데없는 걱정이면 좋으련만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이건 러시아건 궁지에 몰린 나라가 핵무기를 만지작거리다 진짜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클라우제비츠가 일찍이 ‘전쟁론’에서 설파했듯 전쟁의 본질은 정치적 목적의 달성에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목적은 무엇일까. 각자 다른 셈법이 있겠지만 최소한 그 목적이 인류의 공멸은 아닐 테다. 미·러는 전쟁놀음을 멈출 때다. 한국은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 미국의 냉전적 행태에 ‘노’ 해야 하는 때다. 세계 질서는 일극 체제에서 다양성의 가치와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가 보장되는 다극적 체제로 변화하는 대전환기를 지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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