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복지국가의 출산율 [이원재의 사실과 진실]

한겨레 2024. 9. 2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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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원재 |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한국의 작년 합계출산율 0.72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화제이다. 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는 비판적이기 그지없다. 가장 근본적인 견해는 체제 비판에 맞닿아 있다. 이에 따르면 저출산은 높은 자살률과 같은 원인을 갖고 있다. 둘 다 임금, 일자리, 자산을 둘러싼 경제적 양극화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 같은 불평등을 불러일으키는 사회, 경제 체제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대책도 무효할 것이다.

또 다른 비판으로 여성주의적 관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양극화 문제에 동의하면서 출산에 대한 여성의 결정 권한에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함께 문제 삼는다. 공동체가 하나의 정책에 합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여성의 의사를 먼저 물어야 하고, 여성 인권을 침해해온 역사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

6월19일 대통령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 단계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8월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대책은 일·가정 양립, 양육 부담 완화, 주거 부담 완화의 세가지 핵심 분야에 총 108개 세부 과제로 구성돼 있다. 관련 정부 예산은 2024년 2600억원에서 2025년 5200억원으로 두배 증액하기로 했다. 예산 규모의 적절성을 차치하고라도, 이 정책적 노력이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결하는 데 충분한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방식인지의 기준에서 본다면 비판자들을 설득하고 호응을 얻기에 한참 모자라 보인다.

그러나 저출산 데이터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넓혀 보면, 우리 사회의 비판적 진단과 그에 부응하려는 정책 모두에서 진실과 동떨어진 점들이 발견된다. 우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2.1 이하의 출산율을 강제한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이 예외적으로 높은 저출산율을 갖고 있지만, 국제적으로 이와 비슷한 정도로 낮은 국가들은 대개 선진국, 그중에서도 유럽의 복지국가들이다.

나는 교육, 소득, 수명을 합쳐 만든 인간개발지수와 민주주의 점수가 합계출산율과 어떤 통계적 관계를 갖는지, 155개국을 대상으로 측정해보았다. 인간개발지수와 민주주의 점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았으며, 이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했다.

민주주의, 인간개발지수, 합계출산율 사이의 관계

이 분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국제 비교 연구에서 검증되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혹자는 유럽 복지국가의 경우 1.0을 크게 상회하지 않냐고 되묻지만 이는 이민 효과에 가려진 것이다. 비이민 내국인들의 출산율은 현재 한국의 출산율과 큰 차이가 없으며 유럽 각국이 정치적 이유로 이를 발표하지 않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출산율이 높은 국가로부터의 이민자들조차 한 세대가 지나면 출산율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 국제적 추세의 연장선에 있다. 통계개발원이 수행한 2023년 가계동향조사 분석에 따르면 아빠의 소득은 자녀 수와 무관한 반면, 엄마의 소득이 높으면 자녀 수가 줄었다. 현재의 출산율을 감안하면 최근 우리 사회 여성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이 결과는 저출산의 원인을 양육 바깥에서 찾는 시각들과 연결돼 있다. 출산율이 낮은 민주복지국가의 또 다른 특징은 핵가족이 보편화돼 있다는 점이다. 핵가족이란 가부장적인 확대가족의 해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핵가족 측면에서 본다면, 비슷한 수준의 민주복지국가들보다도 낮은 한국 출산율의 원인 하나를 지적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핵가족은 완전하지 않다. 과거 확대가족은 여성의 시가 봉양과 시가 재산 상속 사이의 교환 관계에 기반했다. 그런데 시가 봉양 의무는 대부분 해체된 반면, 결혼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가로부터의 자산 이전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들은 더 이상 매력적인 성이 아니게 됐고, 한국은 국제적으로 신생아 성비가 인위적인 성비에서 자연균형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나라가 됐다. 한편 결혼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지연된 남자 쪽 부모 봉양 의무에 대한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이는 여러 위험회피적 선택을 유발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녀 수를 줄이는 것이다. 이제 고령 인구 증가 때문에라도 남자 쪽 부모로부터의 자산 이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집값 등 결혼 비용을 부모의 자산 이전에 상당 부분 기대는 문제가 사라진다면, 이 유독 낮은 출산율을 둘러싼 복잡한 원인들 중 하나가 해소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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