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음의 묘미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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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마감할 때는 주로 아이돌 가수의 신나는 댄스곡을 들으며 흥을 끌어올린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차트 '톱(TOP) 100'에 주로 머무르기 때문에 장르 구분 없이 그저 듣기 좋은 음악이면 다 좋다.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일화, 배경지식을 찾아봐야 할 것만 같아 부담스럽달까? 유일하게 클래식을 접하는 시간은 '잠 잘 오는 클래식' 같은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잘 때다.
한동안 출퇴근과 기사 마감 때 재생할 음악은 이 채널에서 책임져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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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제 | 문화팀 기자
기사를 마감할 때는 주로 아이돌 가수의 신나는 댄스곡을 들으며 흥을 끌어올린다. 업무를 마치고는 잔잔하면서도 상쾌한 음악을 들으며 퇴근의 즐거움을 두배로 맛본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차트 ‘톱(TOP) 100’에 주로 머무르기 때문에 장르 구분 없이 그저 듣기 좋은 음악이면 다 좋다. 그럼에도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장르가 있다면 그것은 클래식이다. 음악과 작곡가에 얽힌 일화, 배경지식을 찾아봐야 할 것만 같아 부담스럽달까? 유일하게 클래식을 접하는 시간은 ‘잠 잘 오는 클래식’ 같은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잘 때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클래식좀들어라’. 첫 영상을 올린 지 두달 만에 5만명 가까운 구독자를 모으며 소소하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클래식의 유익함을 설교하는 채널 아닌가 하는 거부감을 안고 들어가 보니 웬걸, 생각과 전혀 달랐다. 우아한 음악과 동떨어져 보일 만큼 플레이리스트 영상의 섬네일과 제목이 하나같이 ‘비(B)급 감성’에 가까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베토벤의 음악을 엮은 영상의 제목은 ‘걍 살면 되지 않을까 클래식’. 섬네일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를 ‘걍 살면 되지 않을까’로 바꿔 패러디한 사진이다. 이 밖에도 ‘기분이 흐엉흑흐헝 흑흑 클래식’ ‘8첩 반상 클래식’ ‘어멈아 국이 짜다 클래식’ 등 우스운 제목과 섬네일로 눈길을 끄는 영상들이 여러개 올라와 있었다. 당최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조합에 이끌려 영상을 하나씩 누르다가, 처음으로 잠들지 않고 클래식을 들었다.
나만 이 종잡을 수 없는 조합에 이끌린 건 아닌가 보다. 영상에는 “클래식은 잘 때만 듣는, 배워야 감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장르였는데 이거 들으면서 청소하니까 묘하게 드라마 ‘스카이 캐슬’ 속 가정부가 된 것 같고 좋네요…” “내용이 전혀 가늠 안 되는 제목과 섬네일… 그럼에도 이끌리는 손길…” “듣기 전까지는 감도 안 잡히는 제목 (정하는) 실력의 매력에 감겨버린 것 같다”는 반응이 댓글로 달렸다.
‘요즘은 무엇이 유행을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유행하는 콘텐츠들이 대체로 맥락이 없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그런데 이 맥락 없음이 하나의 특징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지난달 28일 발간한 ‘젠지(Generation Z·제트세대) 콘텐츠 이용 트렌드’ 보고서를 보면, 주로 ‘제트세대’(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출생) 중에서 개연성이 없더라도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맥락이 없으면서도 재미있는 조합이 흥미를 유발하며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생뚱맞음에 이끌려 콘텐츠를 접했다가 어느새 그것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식이다.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도 ‘어멈아 국이 짜다’ 클래식 영상을 틀어놓고 있다. 국이 짜다는 시어머니의 타박을 한 귀로 흘리며 기죽지 않는 굳센 며느리가 된 것 같아 어쩐지 결연해진다. 한동안 출퇴근과 기사 마감 때 재생할 음악은 이 채널에서 책임져줄 듯하다. ‘무맥락’이 주는 재미가 미끼가 되어 즐겨듣는 음악 장르가 넓어진다면 좋을 일이다.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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