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도 못 나가는 국회...'강행→거부권→폐기' 악순환 끊을 수 있을까
26일 국회 본회의는 지난 7월 임시국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강행했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돌아온 쟁점법안 6건은 모두 재표결 끝에 폐기됐다. 여야 모두 상대에게 바랐던 극적인 '이탈표'는 나오지 않은 채 소모적 정쟁만 재확인한 자리였다. 법안 강행처리와 거부권 행사, 재표결 폐기라는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결국 상임위원회 차원의 여야 합의를 통한 법안처리 원칙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본관에서 본회의를 열고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법 등 방송4법 △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안) △ 25만원 지급법'(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법안) 등 쟁점법안의 재표결을 진행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이들 법안은 재적인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시 가결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108석인 점을 고려하면 야권 이탈표가 없다는 가정 아래 여당에서 이탈표 8표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의 당초 예상대로 쟁점법안 6개는 모두 부결, 자동으로 폐기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총 21개다. 이들 거부권 행사법안에 대한 재표결에서 법안이 통과된 사례는 없었다. 결국 폐기된 쟁점법안 역시 정해진 수순을 밟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에 앞서 "반드시 재표결 법안을 부결시키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민주당의 악법 시리즈가 반복되고 있는데 악법 시리즈를 막아내는 건 민생이다.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제대로 해내자"고 이탈표를 단속했다.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거대 야당이 힘만 믿고 여야 간 제대로 된 협의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한 법이다. 반드시 부결돼 폐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은 여당의 이탈표를 기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이번 쟁점법안이 7월 임시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때부터 의석수를 내세운 야당의 일방처리 행태가 부각된 상황에서 여당 내 이탈표가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채상병 특검법 등 여권 내에서 이견이 있는 쟁점법안도 재표결 결과 폐기됐는데 이견이 적은 방송4법 등에 찬성표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쟁점법안 재표결 직전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이 부결되면서 본회의가 정회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심의안건으로 올린 한석훈 위원의 선출안은 여야 합의에 따라 결정된 것인데 야당이 일방적으로 부결시켰다고 반발했다. 여야 교섭단체 협의에 따라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야당 추천인 이숙진 위원의 선출안엔 찬성표를 던졌는데 여당 추천인 한 위원의 선출안에 대해선 부결표를 던졌다는 얘기다. 재표결 직전 거대 야당의 의석수 밀어붙이기가 재현된 마당에 쟁점법안에 대한 여당의 이탈표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쟁점법안의 폐기로 여야 모두 헛바퀴 국회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등 야권은 법안 폐기가 유력한 상황에서 법안 통과를 반복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192석의 '거야' 의석을 확보했지만 쟁점법안 재표결 통과를 위해선 국민의힘 이탈표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모적 법안처리를 이어간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소수당인 여당인 국민의힘은 별다른 대책없이 이탈표 방지에만 주력하는 모습이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통해 쟁점법안의 위헌성·부당성을 부각하는 전략도 펼쳤지만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피로감만 키운다는 비판도 받는다. 야권은 거부권 행사에 따른 대통령의 소통부재를 부각하고 여당은 의석수를 앞세운 거대 야당의 횡포를 지적, 상대방에 책임을 돌린지만 양측 모두 생산성 낮은 국회로 국민에게 정치적 피로감만 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등 대치를 하고 있는 현재의 여야 상황에선 대화와 타협이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고 사실상 불가피한 타협만 이뤄지고 있다"며 "지난 총선에서 보여준 민심에 따라 국정기조의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훈남 기자 hoo13@mt.co.kr 박상곤 기자 gonee@mt.co.kr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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