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 속에 피어난 부마정신…그 치열한 기록들
(재)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국제신문 공동 주최 제5회 부마항쟁문학상 수상자의 소감과 심사평을 게재한다. 지면에는 심사평을 요약해 싣는다. 별도로 펴낼 작품모음집에 원문 전체를 실을 예정이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18일 오후 4시 국제신문 4층 소강당.
# 소설 부문 윤동수
- “참상 겪은 국민병들, 벌떡 일어나 걷기를”
★수상작 ‘관 속에 누워 걷다’
응모한 소설 제목이 ‘관 속에 누워 걷다’ 입니다. 이 작품과 연이 닿은 건 군사 정권 폭압에 맞선 학생들이 제 한 몸 불사르며 죽어가던 1991년 어느 날입니다.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죽음이 잇따르던 그 무렵, 저는 노동자들 파업이 한창인 어느 공장에서 투쟁 속보 작업을 했습니다. 그곳은 육교 철 기둥도 갉아 먹는 이황화탄소를 마셔가며 노동자들이 합성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최악의 산업재해로 이름난 현장이었지요. 노동자들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죽은 지 250일 넘은 시신을 정문 앞에 부려놓고 투쟁했습니다.저는 그 죽음의 공장을 짓기 시작할 때부터 일한 늙은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그가 6·25 전쟁 무렵 국민병으로 죽다 살아난 젊은 날을 털어놓았습니다. 삼십여 년 세월을 보낸 오늘에야 그 짧은 만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고 몸서리쳤습니다.
제가 그려낸 국민병들이 겪은 참상은 우리 사회가 인간을 어찌 대했는지를 보여 주는 한 사례에 불과합니다. 일제강점기, 전쟁, 군부독재 치하를 살아온 우리가 관 속에 누워 걸어온 건 아닐까. 부마항쟁도 그 여정을 헤쳐나오기 위한 소중한 몸부림이겠지요. 저는 꿈꿉니다. 언젠가 우리가 관 뚜껑을 열고 벌떡 일어나 걷기를 말입니다. ▷1990년 계간 ‘사상문예운동’ 등단. 작품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 장편소설 ‘길 끝에서 사라지다’.
# 시·시조 부문 이봄희
- “쫓기는 사람들 편에 기꺼이 서 있다 믿어”
★수상작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저탄 더미가 있는 기차역, 한때 옷에 묻는 검은색이 당연하다 여기며 살던 유년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낮은 채도의 사람입니다. 무거운 통나무를 어깨로 나르는 가장들의 무거운 목도 소리를 들었고 산 너머 광산에서 역까지 탄을 운반하는, 소래기바가지라 부르는 삭도는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높은 공중에서 떠다닐 수 있을까? 저 케이블카를 타면 그 끝에 있는 친척 집에 단번에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교통편이 없어 산 고개를 넘고 넘어야만 했던 그때, 사람들과의 인사도 재건! 재건, 마을 이름도 재건촌인 우리 집 사랑방에는 ‘혁명 과업 이루자’는 목표 아래 강제 동원과 노역, 인권 유린 등의 문제로 사회적 물의가 발생했던, 현재는 근대문화유산인 국토건설단의 간부가 세 들어 살기도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에 다다른 역사는 조금 밝아진 채도일까요? 지금도 쫓기고 도망치던 사람들 편에 기꺼이 서 있다고 믿는 이 마음은 왜일까요.
부족한 시를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정말 그렇게 헤아려 살펴봐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제가 이 무겁고 숭고한 상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늘 가까운 이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오늘도 삶의 채도를 높이고자 불투명한 시간들을 푸르게 푸르게 채색해 나갑니다. 고맙습니다. ▷2018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태일 문학상, 5·18 문학상 신인상 수상.
# 기록문학 부문 오성인
- “비참한 세계 살아내 고생 많았다는 격려”
★수상작 ‘세상에 없는 사람’
도처에서 벌어지는 참상이 멸망의 징조처럼 다가온다. 도심 번화가에서, 지하차도에서, 노동 현장에서, 병원에서 계속되는 죽음. 남은 이들의 한 맺힌 절규. 평생 스스로 ‘뒷것’이라 자처한 故 김민기의 ‘아침 이슬’ 가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혀” 착잡한 가을이다. 그런 와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 ‘수상을 축하드린다’는 통보가 ‘이 비참한 세계에서 살아남느라 고생 많았다’로 들렸다. 내 삶은 늘 슬픔과 죽음에 맞닿아 있었다. 조부의 국민방위군 징집 불응으로 씌워진 연좌제라는 굴레,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본의 아니게 역사의 가해자가 되어 오랜 시간 그늘진 채 살아온 아버지. 광주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폭압과 부조리에 시달리다 끝내 유명을 달리한 외삼촌. 시 쓰기는 시리고 어두운 흔적을 짚어내는 일이었고, 슬픔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시는 왔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10월의 부산과 마산, 1980년 5월 광주, 1987년 6월 서울이 한 길로 이어져 있었다. 거기서 자유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한 마음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 산문집 집필에 많은 도움 주신 김선출 선생님·김용문 삼촌, 소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로 편입될 수 있는지 눈여겨보고 믿어주신 걷는사람 김성규 대표·김안녕 편집장께 영광을 돌린다. ▷1987년 광주 출생. 2013년 ‘시인수첩 ’ 등단.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 등. 산문집 ‘세상에 없는 사람’.
# 아동·청소년문학 부문 윤해연
- “현재진행형의 ‘저항’, 옳지 않은 답에 질문”
★수상작 ‘레인보우 내 인생’
79년 부산의 10월은 음산했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이어진 그들의 외침은 얼마나 치열했을까? 45년의 시간이 지났다. 여기 또 다른 외침이 있다. 차별과 억압이라는 다르지만 같은 이름으로 우리를 부른다. 출판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많이 고민했다. 민감한 주제도 그러했고, 팔리지 않을 책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다가가기로 했다. 그때부터였다.
찬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들의 언어를 적기 시작했다. 그들이 원하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다가갈수록 그들은 조금 더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은 나와 다른가, 수없이 물었다. 질문이 틀렸다. 그들은 타자가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그들이 받는 차별이나 억압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었다.
21세기 한국은 20세기 망령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부산에서 마산으로 이어졌던 부패와 억압에 대한 저항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다. 내가 쓰는 언어들이 그들의 사고를 규정지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다. 다름을, 다양성을, 옳지 않은 답에 다시 질문하라고. 그리하여 79년의 외침을 기억하라고. 그 외침이 도달한 곳이 바로 여기 현재라고.▷2022년 제12회 창원 아동문학상, 2014년 제22회 대교눈높이 문학상 대상, 2014년 제3회 비룡소 문학상.
# 신인문학상 김민선
- “학부모단체서의 경험…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수상작 ‘우리는 바위다’
바람에 날려 오는 최루탄 냄새는 맡아본 적 있지만, 그 가운데 서 있어 본 적은 없습니다. 경찰서에 끌려갔었다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지각생 친구의 숙제를 도와주며 세상을 조금씩 알아갔을 뿐 털끝 하나 다쳐본 적도 없습니다. 대신 그 미안함과 고마움만은 잊지 않으려 한다고 하니 남편이 말했어요. “넉넉지 않지만 아끼고 살면 부족하지도 않은 형편이다. 우리 것을 사회에 돌려준다 생각하고 니가 하고 싶은 시민단체 활동하라”고.
결혼 후 새로 시작한 것이 맞벌이가 아니라 학부모단체였습니다. 경쟁 대신 협동하고, 입시보다는 작은 꿈도 소중히 여기는 학부모단체입니다. 아이들은 얼마든지 자생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상작 ‘우리는 바위다’는 학부모 활동을 하며 학교 안전 지키기로 공청회를 연 경험을 떠올려 썼습니다. 학교 옆이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보다 자본 논리로 재개발 돼고 있었습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촛불을 드니 선생님들이 풍물패를 꾸려 나왔고, 함께 행진했습니다. 어느 날 학생자치회가 선생님·부모들한테 말도 하지 않고 등교시간에 공사장 앞에서 현수막 시위를 했습니다. ‘우리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라고 적어서. 멋지다고 칭찬했더니 ‘우리 학교라서 우리가 지키는 건데 왜 칭찬하느냐’는 표정을 지었어요. 아이들에게 배우고 느끼는 게 참 많습니다. ▷1972년 부산 출생.공저 ‘자꾸자꾸책방’, KB창작동화제 장려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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