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의 한’ 끝내 못 풀고…5·18유공자 방양균씨 별세
국보법 실형에 국립묘지 안장도 배제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간첩조작 피해자인 방양균(69)씨가 25일 새벽 2시께 광주광역시 한 요양병원에서 별세했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고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지난 5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특히 5·18유공자임에도 국가보안법 실형 전력 때문에 국립묘지 안장이 배제되어 유족과 지인들은 “죽어서도 국가로부터 외면당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고인은 1980년 5·18 시위에 참여했다가 계엄군 구타로 다쳐 2003년 5·18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유족들은 국립5·18묘지사무소쪽에 고인의 안장을 문의했지만 거부당했다. 고인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국가유공자법이 정한 안장 비대상자라는 것이다. 해당 법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금고 이상 실형을 받으면 국가유공자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유족 등은 고인이 노태우 정권 시절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라는 점에서 안장 배제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88년 서경원 방북 사건으로 7년 옥고
재수사에서 ‘사건 조작’ 드러났지만
재심 청구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
4년 전 재청구…결과 못 보고 떠나
출소 뒤엔 적극적으로 인권운동
광주 살레시오 초·중·고를 졸업한 방씨는 1975∼77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신학 공부를 한 뒤 귀국해 1979년 병역을 마치고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자영업 등 생업에 종사하다 1988년 5월 13대 총선 뒤 서경원 당시 평화민주당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서 의원은 같은 해 8월19~21일 방북해 김일성과 ‘통일회담’을 했다. 서 의원은 같은 해 11월에는 방씨에게 방북 사실은 밝히지 않은 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덴마크 동포 이아무개씨에게 후원금 1만2천달러를 받아오라고 했다. 서 의원은 이듬해 6월 방씨 등 비서관들에게 방북 사실을 알렸고, 서 의원과 방씨 등은 안전기획부(지금의 국가정보원)에 체포됐다.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에게 전달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방씨는 수사 초기 서 의원의 방북 사실을 몰랐고 덴마크 동포 이씨는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 상태로 고문 수사를 받다 사형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검찰의 거짓 자백 요구에 넘어가 7년간 옥살이를 했다. 1996년 7월 만기 출소한 방씨는 광주전남양심수후원회 자문위원, 광주전남고문피해자모임 대표, 국제앰네스티한국36그룹대표, 광주대 인권연구소 부소장 등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인권운동을 펼쳤다.
2001년 1월 검찰 재수사에서 북한 공작금 수수사건은 ‘강압수사에 의한 조작’으로 드러났다. 고인은 강압에 의한 허위진술을 했다며 2010년 3월10일 서울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2016년 12월16일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다. 대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변호인 접견 결과’ 서류를 근거로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기소 하루 전인 1989년 8월11일 작성된 해당 서류에는 고인이 변호인에게 “고문을 받지 않았고 죄를 인정한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고인은 변호인 접견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해당 서류가 날조됐고 고문 흔적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1989년 9월 작성된 신체감정서를 근거로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서 의원과 함께 2020년 9월2일 다시 합동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박동기 남녁현대사연구소 소장은 “고인은 생전에 재심 무죄 판결을 간절히 원했다”며 “조작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끝내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국립5·18묘지사무소는 “방씨는 국가보안법으로 실형을 살았기 때문에 안장 배제 대상으로 분류됐다”며 “훗날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안장 여부를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광주 남문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6일 저녁 7시께 추모의 밤을 열 예정이다. 장지는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다진씨, 딸 어진·미소씨가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30분이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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