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묻은 아이 주검…“진화위, 영화숙·재생원 유해 발굴 나서라”
생존자들 요구…다음 달 14일 진화위 조사관들 현장 방문
“10명 중 9명은 죽었습니다. 대부분 10대였고, 뇌진탕이나 갈비뼈가 찔려 사망해도 꾀병이라고 죽어서도 맞아야 했습니다. 원장은 아이들을 유기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시켰습니다. 아이들이 죽은 친구를 리어카나 작은 지게로 싣고 산을 올라 묻어야 했습니다. 가마니 한 장도 아깝다고 반장으로 시신을 덮어 똥통으로 불린 갈대밭 습지에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원장은 아이들을 외진 곳에 잘 묻었는지 나무 꼬챙이로 푹푹 쑤시며 확인했습니다. 부산 시내 오물통이 모이는 곳이라 사람이 드물었지만,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진실화해위는 영화숙·재생원 유해발굴을 시작해야 합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두에서 엄마 손을 놓친 뒤 9살 때인 1963년부터 부산의 부랑아수용시설 영화숙·재생원에 수용돼 생활했다는 71살 유수권씨의 이야기다. 유씨는 26일 오후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앞에서 열린 ‘진실화해위의 제6차 고문방지협약 최종견해 수용촉구를 위한 기자회견’ 현장에서 대독을 통해 과거의 비극적인 경험을 증언했다. 아이들이 리어카나 작은 지게로 싣고 산에 올라 아무 데나 묻었던 친구들의 주검을 이제는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1950~1960년대 부산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단수용 시설이자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던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10여명이 모였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심의대응 시민사회 단체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등 16개 단체 회원들도 참석했다. 이들의 요구는 “정부와 진실화해위는 올해 고문방지협약 최종견해에 근거해 피해자들의 자료를 발굴하고 영화숙·재생원 사망자들의 유해발굴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지난 7월19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대한민국 제6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심의 결과에서 “과거 국가폭력과 시설화의 피해자 중 극소수만이 보상과 재활을 포함한 구제를 받을 권리를 누리고 있다”면서 “국내법 개정을 통해 보호시설, 고아원, 기타 폐쇄형 시설의 피해자를 포함한 과거 국가폭력과 시설화의 모든 피해자가 공식적인 진정을 제기하지 않아도 보상, 만족, 재활 서비스 등 효과적인 구제 및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고문방지협약 최종견해를 해설한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국내법을 개정해 당사자 소송 없이도 완전한 구제를 하라는 게 권고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손석주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는 이날 발언에서 “피해를 입증할 자료도 부족하고 유해발굴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고령의 피해생존자들은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진실화해위가 내년 5월 활동을 종료하면 더는 의지할 곳이 없다”며 “수용시설 피해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과거의 고통과 아픈 상처들을 치유해달라”고 말했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피해생존자 중심의 조사와 부산시 등 자료접근 지원 △희생자의 유해 매장 부지를 시굴하고, 시설부지 보존 등의 후속조치 마련 △집단수용 시설피해 생존자에 관한 효과적 구제와 재발방지 대책 권고 등을 진실화해위에 요구했다.
이날 한겨레 취재 결과, 진실화해위 조사2국 조사관들은 다음 달 14일 영화숙·재생원 진술조사를 통해 확인된 시신 암매장 추정지역 현장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신 암매장이 이뤄진 곳으로 추정되는 현장은 1950, 1960년대 영화숙·재생원이 있던 부산 사하구 신평동(옛 서구 장림동)으로 아직 야산 터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손석주 대표는 “지게로 시신을 지고 나가 직접 묻은 형님들이 적지 않은데, 물어보니 다들 시신을 묻은 위치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는 매년 망자의 날인 음력 9월9일(올해 양력 10월11일) 암매장 추정지역에서 사망자 위령제를 지내왔다.
재단법인 영화숙이 운영한 영화숙과 재생원은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은 형제복지원(1975~1987)의 박인근(1930~2016) 회장이 모델로 삼은 수용시설이다. 각각 1951년과 1962년 설립됐는데, 부산시의 업무 위탁과 지원으로 덩치를 키워 1960년대 후반 각각 400여명과 800여명을 수용했다. 이순영이 원장이었던 영화숙·재생원에 수용돼 폭행·감금·강제노역·성폭행·사망 등 각종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971년 7월 재단법인 마리아 수녀회 대표 소 알로이시오(1930~1992, 한국명 소재건, 미국명 알로이시오 슈월츠)가 영화숙 원장 이순영을 고발하면서 1973년 1월 시설 인가가 취소됐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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