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규모는 이미 선진국 … 돈벌이 아닌 치료 집중해야 "
◆ 요양시설 복마전 ◆
한국은 내년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노년의 존엄한 삶을 위한 돌봄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요양시설 숫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의 요양병원은 2008년 690곳에서 2022년 1437곳으로 14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병상 수도 7만6556개에서 27만2021개로 3.5배 넘게 늘었다. 인구 1000명당 요양병원 병상(long term care)은 5.27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복지천국'으로 불리는 핀란드보다 10배 이상 많다.
임을기 복지부 노인정책관은 "베이비붐 세대를 비롯한 노인층으로 진입하는 이들은 장기요양 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다"며 "사생활을 중시하는 추세를 감안해 요양시설도 다인실 위주 시설을 1인실 위주로 바꾸고 침실 최소 면적을 확대하는 한국형 유니트케어 시범사업을 지난달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숫자로 보면 한국은 이미 요양 선진국이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갈길이 멀다. 의료 서비스나 안전 관리체계는 미흡하고, 돈벌이에 급급한 요양시설의 불법 행태가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요양병원이 요양급여비용을 거짓 청구해 적발된 징수 대상 금액은 최근 10년간 1981억원에 이른다.
특히 병원비 결제금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불법 페이백 브로커로 인해 불필요한 장기 입원 환자가 양산되면서 정상적인 요양병원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요양병원 진료비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 누수도 심각하다.
임선재 대한요양병원협회 수석부회장(더세인트요양병원장)은 "협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며 "요양병원 간 과다경쟁과 상술,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사회복지학회장)는 "상당수 국민이 실손보험에 가입해 사회적 재원을 형성하고 있지만 의료 보장 내용에 대한 적절성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부재하다"며 "실손보험 관리에 구멍이 생겼고 이용자가 여기에 담합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요양병원 브로커에 대한 매일경제 보도 이후 요양병원협회는 페이백 엄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배포하는 한편 불법행위 신고센터를 통해 자정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박은하 용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강력한 단속과 처벌 수위 강화 등 엄격한 법 적용이 필요하고 신고 유인책을 쓰는 것도 방법"이라며 "병원에서 이뤄지는 부당청구의 대부분은 비급여로 청구되기 때문에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인 의료비 비중은 매년 늘어나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졌다. 부정수급 기관은 전체 기관의 5% 수준이지만 1342개소에 이르고 적발금액도 작년 기준 667억원에 이른다. 건강보험공단 직원과 친인척까지 부정수급 요양시설에 연루돼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임을기 정책관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단에서도 주기적으로 관련 직원을 조사하고 해당 지역의 인사전보를 제한하고 있다"며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주기적으로 관리와 점검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연고 노인 환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범죄가 늘고 있지만 2020년 이후로는 무연고자 유류금품 처리 실태 자료를 취합 중인 상황이다. 박 교수는 "치매노인은 치매공공후견법인을 통해 급여관리자를 지정할 수 있지만 제도 자체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며 "고령자 공공신탁제도를 통해 재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의 재산을 정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대신 관리한다면 이 같은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을기 정책관은 "무연고자 유류금품 처리 실태에 대해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라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시설장과 종사자 5만4957명에 대해 유류금품 처리 적용 지침 교육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전문가 의견은 요양병원이 입원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중증 환자에게 집중하고, 의료 서비스 필요성이 감소할수록 지역사회로 복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데 모인다.
임선재 부회장은 "의료 서비스의 요구도가 높은 환자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요구도가 낮은 환자는 요양원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기본 전제"라며 "다만 현재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입소하는 환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역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기 정책관은 "한국의 노인 돌봄 서비스는 의료, 요양, 돌봄 영역이 별도의 대상자 선정 기준을 가지고 있어 중복 선정될 수 있다"며 "통합 판정체계를 구축하면 의료와 요양 필요도를 공통 기준으로 평가해 상태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범 기자 / 최예빈 기자 /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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