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황으로 서버용 메모리 수요 넘쳐…"내년 공급 부족할 수도"
HBM 2025년 물량까지 완판
AI '학습' 이어 '추론' 수요 급증
2027년 4배 규모로 커질 듯
고용량 낸드플래시 판매도 호조
'과도한 설비투자' 우려는 기우
베인 "지정학적 긴장이 겹치면
AI 메모리 부족 사태 올 수도"
최근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제기한 ‘메모리 반도체 겨울론’의 핵심 근거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과잉’이다. 내년 공급량(250억기가비트·Gb)이 수요(150억Gb)보다 67% 많아 경쟁이 치열해지고 가격이 떨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시장에서 직접 뛰는 기업들의 생각은 다르다.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내년 HBM 수요가 공급량과 거의 일치하는 250억Gb에 이를 것으로 봤고,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도 25일(현지시간) “HBM 수요는 강력하고 내년 HBM 수급은 타이트하다”며 ‘반도체 비관론’을 일축했다. 세계적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한술 더 떠 “인공지능(AI) 메모리 부족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커지는 AI 메모리 시장
삼성전자는 내년 글로벌 HBM 수요를 250억Gb로 잡았다. 내년 메모리 3사의 HBM 공급량 전망치와 같은 수준으로 모건스탠리 등이 예상한 ‘공급 과잉’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삼성전자는 HBM이 전체 D램에서 차지하는 비중(웨이퍼 투입량 기준)도 2024년 16%에서 2025년 28%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는 AI 시장이 계속 커지는 점에 주목했다. 그동안 AI 고도화를 위해 데이터를 ‘학습’하는 데 메모리 반도체가 주로 투입됐다면, 앞으론 AI 서비스를 실행하는 ‘추론’ 수요도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129억Gb 수준이던 AI 특화 메모리 시장이 2028년 2294억Gb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력한 AI용 메모리 수요는 이날 열린 마이크론의 2024회계연도 4분기(6~8월) 실적에서도 확인됐다. 마이크론의 4분기 AI 반도체(컴퓨트·네트워킹사업부) 매출은 3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2%, 전 분기 대비 17% 늘었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HBM은 2025년 물량까지 완판됐다”며 “HBM 수급 상황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HBM 등 D램 수요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고용량 낸드플래시 수요 증가도 가파르다. 마이크론은 2024회계연도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매출이 전년의 3배가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서버용 D램과 HBM이 D램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요 맞춤형’ 시장으로 변하면서 제조사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과잉 투자 우려 일축
모건스탠리 등 IB들의 과도한 설비투자에 대한 걱정도 ‘기우’라고 메모리 기업들은 일축한다. 올해 설비투자가 HBM 등 고부가가치 D램 생산을 늘리고, 구형 생산라인을 최첨단으로 전환하는 데 집중되는 만큼 공급량이 크게 늘어날 수 없어서다. 메로트라 CEO는 “올해 설비투자에 81억달러를 투입하고 내년에도 유의미하게 늘리지만 비트로 환산한 공급량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HBM을 만들려면 일반 D램의 3배 수준 웨이퍼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들의 AI 서버 투자가 내년까지 이어지고 엔비디아의 신형 AI 가속기 양산이 연말 본격화한다는 점도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AI 가속기엔 8개 안팎의 고용량 HBM이 내장되고 AI 서버엔 AI 가속기와 함께 기업용 SSD도 들어간다. 반도체업계에선 엔비디아가 4분기에 100억달러(약 13조원) 안팎의 신형 AI 가속기를 판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HBM과 SSD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
‘메모리 겨울론’은커녕 ‘AI 반도체 부족’을 걱정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이날 공개한 ‘2024 기술 보고서’를 통해 2026년까지 HBM은 60~65%, D램은 40~45%, 낸드는 30~35%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베인은 기업들에 “지정학적 긴장이 겹치면 칩 공급 부족이 올 수 있다”며 “장기 구매 계약과 공급망 다각화로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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