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소년 1호 대안학교 여명학교설립 20주년…환대가 아이들 지켰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키지만 꼿꼿하고 바른 자세와 다부진 체구에서 왠지 모를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가 입을 열면 ‘국민MC’ 유재석 저리가라할 재담꾼이 돼 청중을 휘어잡는다. 슬픈 이야기는 웃기게, 웃긴 이야기는 진지하게 하면서 희비극이 정신없이 교차하는 자신의 어린 시절 대서사를 시트콤처럼 풀어놓는다. 탈북 후 성경을 들고 재입북하다 붙잡혔지만 살짝 눈감아준 군인 덕에 구사일생 목숨을 구한 이야기는 듣기만해도 아찔하다. 수용소에 갇혔을 때 앞서 동사한 시신을 수습하며 언 땅을 깨야했던 일은 듣기에도 힘겨운 사연이다. 누군가는 거부감이 들법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의 결말이 ‘증오와 대결’이 아닌 ‘평화와 치유’를 사명으로 삼게 된 우리 곁의 한 청년이기 때문에 감동적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보고 충격을 받아 “남조선은 이렇게 불안정한 곳인가”, “잘못왔나” 싶었다는 말에 폭소가 터지다가도 “이것이야말로 안정된 민주주의라는 역설을 체험한 계기가 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됐다”는 결론은 모범적이고 교훈적이어서 흐뭇함이 차오른다. 그는 널리 알려 마땅한 보석같은 청년이나 신분이 노출되는 인터뷰는 끝내 거절했다. 북녘에 아직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사석에서 만난 그는 누구나 호감을 가질 청년이지만, 그는 한때 님비현상 탓에 터전조차 잡지 못했던 ‘여명학교’ 출신이다.
보고서에는 어린 나이에 사선을 넘고, 차별적 시선과 정체성 혼란을 겪어야했던 학생들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비로소 안정을 찾고 성장해나갈 수 있게 한 교사의 헌신과 환대의 힘이 생생하다. 한 졸업생은 이렇게 증언했다.
“선생님들께서 한 명 한 명 진심으로 대하시는 게 일단 느껴졌고 수업 시간에 그냥 어떤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시다가도 ‘너희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이고 할 일들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게 그냥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정말 선생님들 스스로 그렇게 믿고 행동으로 표현됐어요.”
통일부는 여명학교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서울시교육청과 적극적인 협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감 부재 상태인 교육청과 논의가 순조롭지만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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