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블록처럼 조립한다...반도체 기술 ‘칩렛’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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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는 1932년에 태동한 덴마크의 블록 장난감 회사이다. 목수 출신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창업했다. 레고란 이름은 덴마크어로 ‘잘 놀다(Leg Godt)’의 앞 글자를 따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 장난감을 만들던 레고는 1947년엔 플라스틱 사출 성형기를 도입해 합성수지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후 레고는 표면에 둥근 기둥 모양의 오목형 구조와 볼록형 구조를 만들어 서로 쉽게 결합되고 분리도 되게 했다. 그래서 다양한 조합을 통해 여러가지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놀이를 통해 창의성이 길러진다. 해체하고 보관하기도 쉽다. 그래서 요즘도 백화점 레고 가게 앞엔 어린이 손님들이 몰린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반도체도 레고처럼 조립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수율(합격품 비율)이 높고 다양한 기능과 성능을 갖는 제품을 생산 효율성이 높게 조립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반도체판 레고 기술을 ‘칩렛(Chiplet)’이라고 부른다. 칩렛은 반도체를 연산·저장·통신 같은 기능별로 쪼개 제작한 다음 다시 조립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칩을 장난감 레고 블록처럼 쪼개 원하는 용도대로 쉽고 빠르게 재조립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왜 굳이 레고처럼 조립해야 할까. 반도체 공정은 일종의 빛을 이용한 판화 공정이다. 빛으로 만들어진 패턴에 표면을 식각(蝕刻·특수 화학 약품을 써서 반도체 원판<웨이퍼>에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는 것)하고, 절연물을 붙이고, 전자회로의 기능을 갖추도록 특정 성분의 불순물을 집어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트랜지스터(반도체에서 전기 흐름을 조절하는 부품)를 서로 연결하면 GPU(그래픽 처리 장치)도 되고 HBM(고대역 메모리)도 된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원판에 빛을 이용해 회로를 새기는 공정을 ‘노광 공정(Photolithography)’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틀’인 마스크(레티클)를 따라 원판 위에 빛으로 패턴을 그려넣는 방식이다. 마치 옛날에 필름 사진을 인화할 때 필름에 형성된 상을 인화지에 인화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회로 패턴이 담긴 마스크에 빛을 통과시켜 반도체 원판에 회로를 찍어낸다. 그런데 마스크의 크기가 커지면 빛이 통과하는 동안 왜곡이 커져서 패턴을 원판에 나노(10억분의 1m) 크기로 정확하게 찍어내는 작업이 어려워지고 결함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수율이 감소한다. 이에 마스크의 크기를 무작정 키울 수 없다. 마스크 크기가 커지면 그만큼 결함의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정한 크기 이하의 칩으로 제작하고 패키지 단계에서 이들을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방법이 더 유리하다. 이렇게 장난감 레고처럼 다양한 반도체를 조립하는 기술이 바로 칩렛인 것이다. 이때 필요한 조립 공정이 바로 ‘반도체 패키징(Packaging) 기술’이다.
칩렛 패키징 과정에선 기판 위에 다양한 반도체를 조립하고 전기적으로 서로 연결한다. AI 컴퓨터용 칩렛의 경우 다수의 CPU(중앙 처리 장치), GPU와 HBM들이 함께 기판 위에 올라간다. 이렇게 하면 CPU, GPU와 HBM을 잘 만드는 각각의 기업들이 각자 자신 있는 것을 만들어 조립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예를 들어 CPU는 인텔, GPU는 엔비디아, HBM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제품을 쓰면 된다. 각각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기술이다. 이렇게 패키징 단계에서 조립하면 AI 수퍼컴퓨터에 필요한 ‘AI 복합(Hybrid) 반도체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다.
레고도 규격화된 블록이 있어야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반도체도 칩렛 기판에서 전기적으로 연결되려면 반도체 입출력 회로의 규격이 서로 맞아야 한다. 이에 인텔을 중심으로 칩렛 반도체 입출력 회로의 표준화를 위한 ‘UCIe(Universal Chiplet Interconnect Express)’ 규격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칩렛 생태계를 구축해 비용 절감, 시간 단축 등을 하자는 취지다. 이렇게 칩렛은 마치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과 유사하다. 칩렛은 수율을 높이고, 경제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복합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레고 기술이다. AI 반도체 개발에도 레고 장난감 놀이에서 익힌 창의성이 필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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