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끼리 뭉치자" 한국 찾은 에스토니아 스타트업들
북유럽의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7개 신생기업(스타트업)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26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관과 에스토니아 기업청 주최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에스토니아의 ICT 산업과 양국간 교류 방안을 소개했다. 이번에 방한한 기업은 로봇업체 5.0 로보틱스, AI로 매출 예측을 하는 어답토미디어, 사이버 보안업체 사이브엑서, AI업체 디지오터치, 자동차 판매 솔루션을 제공하는 모데라, 통합 재무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레프호프, IT컨설팅 업체 와이저캣 등 7개사다.
인구 130만 명의 작은 나라인 에스토니아는 국가 위기를 겪으며 ICT와 사이버 보안 산업을 일으켰다. 스텐 슈베데 주한 에스토니아 대사는 "1990년대 구 소련에서 독립한 뒤 모든 공장이 텅 비는 등 산업기반이 무너졌다"며 "당시 신생 정부는 디지털 산업을 키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이버 보안 산업도 국가 위기의 산물이다. 에스토니아는 2007년 수도 탈린에 있던 구 소련 군인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기념동상을 철거하면서 러시아 해커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그 바람에 에스토니아 대통령궁과 정부, 기업 등 국가의 주요 기능이 3주간 마비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스토니아는 사이버 보안을 집중 육성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디지털 조기 교육에 집중했다. 슈베데 대사는 "어린이들의 인터넷 접근 권리를 인권으로 보고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컴퓨터 교육을 실시한다"며 "아이들은 방과 후 다양한 클럽에 참여해 로봇 조립 등 무상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에스토니아 기업청의 에바 포노마르요브 무역 대표도 "매우 높은 수준의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코딩 학교를 따로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일찌감치 전자주민증과 외국인의 전자거주권도 도입했다. 2002년 도입한 전자주민증은 반도체를 이용한 주민등록증으로 모든 문서에 본인 서명을 대신하고 여행갈 때 신분증이나 약 처방을 받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전자거주권은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 외국인이 에스토니아에 살지 않아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전자거주권을 만들어 기업 설립부터 각종 서비스와 혜택을 제공한다. 포노마르요브 무역 대표는 "전자거주권을 도입해 다른 곳에 살면서 에스토니아 국민처럼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각종 공공서비스를 디지털로 제공해 10분이면 기업 설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에스토니아는 인터넷 전화로 유명한 스카이프, 해외 송금을 전문으로 하는 금융기술(핀테크) 업체 와이즈, 자율주행 로봇을 만드는 볼트 등 널리 알려진 스타트업이 속속 나오며 1조 원 이상 가치를 지닌 유니콘 스타트업을 10개 이상 보유했다. 지금은 사이버 보안과 함께 디지털 건강관리, 블록체인 등을 강조한다.
디지털 건강관리 분야에서는 국민을 중심에 둔 공공서비스를 지향한다. 그래서 국민들의 의료 정보를 병원이 아닌 각 개인이 갖고 있다. 포노마르요브 무역 대표는 "개인이 의료 정보를 보관하며 무엇을 저장하고 지울지 직접 선택하고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제공한다"며 "개인 맞춤형 의료에 초점을 맞춰 전자처방전과 전자구급차 제도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개인 정보를 제공할 경우 '1회 제공'(once only) 원칙을 준수한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데이터 제공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원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인 정보를 추적하지 않는다.
이번에 방한한 에스토니아 스타트업들은 AI, 소프트웨어 서비스, 보안, 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협력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이들은 현대자동차, SK네트웍스, 코오롱 인베스트먼트, 한화생명보험 등 다양한 국내 기업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미 한국 기업들과 50번 이상 만났다"며 수북한 명함을 꺼내 보여준 자코 잘카넨 사이버엑서 대표는 "한국은 ICT 강국이어서 수 많은 기업과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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